[즐거운 인생]을 겉도는 '개 같은 인생'
[즐거운 인생]을 겉도는 '개 같은 인생'
  • 김영주
  • 승인 2007.09.21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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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이야기]즐거운 인생

▲ 즐거운인생 포스터.
‘웰well메이드maid 작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난 ‘좋은 작품’이란 말과 구별해서 쓴다.  비록 영화 만드는 기술에서 ‘웰메이드 작품’일지라도, 예술적 감흥이 깊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술적 감흥과 그 깊고 옅음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이걸 말하기엔 이 글마당이 너무 좁다. )  이준익 감독의 작품을 나의 눈으로 웰메이드의 상·중·하와 예술적 감흥의 상·중·하로 가름해 보면, [황산벌]은 웰메이드(하)+예술적 감흥(하)=C+학점이었고, [왕의 남자]는 웰메이드(중)+예술적 감흥(하)=B0학점이었고, [라디오 스타]는 웰메이드(중)와 예술적 감흥(중)=B+학점이었다.

[라디오 스타]에서 맛 본 B+학점의 흥취를 잊지 못하여, 그의 새로운 영화 [즐거운 인생]을 곧장 찾아갔다.  그런데 실망했다.  웰메이드(하)+예술적 감흥(하)=C+학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게, 이 세상에 그늘진 삶의 씁쓸한 모습에 따뜻한 눈길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흔 중반에 세상살이 구석지로 몰려 비틀거리는 세 남자.  마누라의 월급에 기대어 대책없이 세월만 낚는 만년백수, 마누라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학비와 생활비 벌어 대느라 아등바등하는 중고차사장,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택배업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걸 집에 숨기고 근근이 버티는 주야헐떡남.  이런 ‘개 같은 인생’이 쪽팔려서 옆구리로 터져 나와, 샛푸른 대학시절의 별 볼 일 없었던 ‘락밴드 활화산’을 돌이켜 보려는 몸부림이 가엾지만 귀엽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귀여움이 순박하게 풋풋해서 흐뭇하면서도, 저런 심성으론 이 엄혹하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치이고 자빠지고 깨질 수밖에 없다는 냉험한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명치끝에 씁쓸한 애잔함이 아려온다.  [라디오 스타]에서 서민의 리얼러티가 상당히 좋았지만, 안성기와 박중훈의 모습에서 여기저기 서운했다. 이 영화에선 삶의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지고 상투적이고 도식적이다. 이런 이야긴, 그 명치끝에 아려오는 씁쓸함을 잘 그려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엔 그 껍질만 보여주고 만다. 그들의 슬픔이 겉돌았다.

그렇다고 별 볼 일 없는 영화는 아니다. 세 남자의 연기력이 좋다. 특히 중고차사장의 연기가 좋았다. 장근석이라는 젊은이는 상당히 돋보였다. 그가 KBS드라마 [황진이]에선 그저 꽃미남 마스크 하나로만 기억됐는데, 여기에선 반항아로 돌변하여 냉소어린 싸늘한 표정에 미묘한 내면심리를 비쳐내는 연기가 참 좋았다. 노래솜씨도 상당해서 중급가수쯤은 되어 보였다. 이준익 감독은 락음악에 나름대로 평범치 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감성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라디오 스타]에서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음악을 소재로 엮어가는 솜씨가 그 나름의 안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라디오 스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락음악이 미국 락음악의 본 모습을 잃고 우리나라에서 변형된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제대로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가 우리 나름의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예민하게 의식하여, 마지막 노래장면에서 ‘한동안 뜸했었지’를 먼저 불러서 관중의 흥을 후끈 달구어 놓은 다음에, 주제가 ‘즐거운 인생’으로 마무리 지었더라면 엔딩장면의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가 이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한 ‘즐거운 인생’보다 이 영화에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대체로 잘 만든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서운한 점이 많다.  이번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삶의 리얼러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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