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해소에 대한 단상
갈등해소에 대한 단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9.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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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 김용주(언론중재위원회 사무총장)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는 개인이나 단체 등이 언론보도내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경우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간에 서서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직업상 필자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의 언론세상에서 말과 말이 충돌하고 뒤얽혀 극단의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일반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데 있어 아주 사소한 것이 걸림돌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위원회를 방문하여 상담을 받는 분들의 상당수는 위원회에 와서 많은 위안을 받고 간다는 얘기를 한다. 단지 언론피해구제에 대한 법적 절차를 안내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담하는 직원들이 자신들의 분노감정, 억울한 심정 등 막말로 날것 그대로의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공감해 주니 그동안 쌓였던 감정적 앙금이 일부나마 상담단계에서 해소된다는 것이다.

 상담단계를 지나 조정신청이 되어 심리가 개시되고 언론사 대리인과 신청인 그리고 중재위원들이 한 자리에 만나 문제가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잘 듣기’는 아주 중요하다. 언론중재위원들은 현직 법관, 변호사, 대학교수, 전직 언론인 등 저명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는 신청 내용을 살펴봤을 때, 사안의 복잡성 등으로 미루어 도저히 조정단계에서는 해결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중재위원들이 신청인과 언론사를 대표하여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경청하고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경우 의외로 쉽게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한다. ‘잘 듣기’가 없었다면 도저히 풀릴 수 없었던 문제가 ‘끝까지 잘 듣기’로 인해 해결되는 작은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의 경우 그 수위가 이미 사회의 안정과 건강한 발전에 지장을 주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지 않나 싶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문제, 교육정책을 둘러싼 논쟁, 노사관계, 남북관계, 부동산 문제, 의료문제, 종교간 갈등 등 쉽게 떠오르는 사회적 갈등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이미 타협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갈등구조 자체를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뿌리 깊은 갈등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문제해결 방안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흔히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올바른 대화와 타협을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잘 듣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기에 영어교육을 시키고, 해외 유학을 보내거나,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듣는 교육은 우리 모두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체제와 이기심의 극대화가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귀를 막고 입만을 연다면 상대방을 이해하지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경쟁을 하되 공정한 룰을 기반으로 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의식이 일반화 되는 진정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첫 단계인 ‘잘 듣기’ 교육이야말로 사회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사회가 입이 큰 사람보다는 귀가 큰 사람을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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