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거짓말
화려한 거짓말
  • 곽규호 기자
  • 승인 2007.07.30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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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곽규호 편집장

'화려한 휴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공수부대의 잔인한 살상극(그것은 진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했다)에 붙여진 작전명 치고는 너무도 멋들어지다. 80년대 후반쯤엔가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을 알았다. 왜 하필 그런 이름이었을까. 공수부대는 18~21일 비인간적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학생들이 겁을 먹으면 뒤로 물러설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내 자식, 내 이웃이 당한 폭력, 백주에 벌어진 군인들의 만행에 광주시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거대한 민주화 요구의 물결로 일어섰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다. 대구 출신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교과서에서, 혹은 구전으로 전해들은 이야기가 화면에 등장한다. 아니 진짜로 군인이 사람을 죽였어요? 진짜로 시민들에게 겨누고 총을 쐈어요? 실화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 영화 진짜예요?

5·18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차마 가슴이 아파서 영화를 못 보겠다고 했다. 사실 ‘5월’을 다룬 예술작품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지난 과거의 엄청난 아픔에 맞서게 하는 고문에 다름 아니다. 잊으려 하는(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채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현실사회에서 진실은 아직도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80년 12월 겨울방학을 맞은 필자는 전북의 외가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외삼촌은 군인들이 시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옆 집 형이 총에 맞고, 다른 선배가 몽둥이로 얻어 맞았다고 해도 어린 놈이 거짓말을 한다고 외면했다. 광주는 80년대 내내 대한민국의 섬이었다.

최근 수년동안 매년 5월만 되면 인터넷은 ‘5·18이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토론방이 시끌벅적하다.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층 일부에서는 아직도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 사주한 폭동, 전라도만의 정신병적 발상, 군인에게 총을 쏜 것이 어떻게 민주화운동이냐는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5·18을 왜곡 전달하는 인터넷 카페(전두환을사랑하는사람들)에 가입한 회원이 1만명이 넘고, 그 내용이 곳곳에 유포된다. 전두환이 징역형을 살고 나왔지만 그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신군부의 군사독재 망령은 합천 일해공원에서 버젓이 활개를 친다.

전씨의 소감을 듣고 싶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감동을 준 장면을 세 가지로 꼽는다. 시민군 인봉이 잠든 부인과 아이를 돌아보며 울음을 참는 장면,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어린아이, 신애가 마이크를 잡고 시내를 돌며 방송한 내용 ‘광주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 때 광주의 밤거리를 울리던 마이크 속 여인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광주 시민들이 가슴 속으로 부르짖던 외침이다. 진실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진실이 외면당학 거짓말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거짓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거짓말과 협박으로 나라를 움켜쥐던 시절이 불과 10여년 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께 화려한 휴가 무료 티켓을 꼭 건네주며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전남여고 1학년이라는 학생이 영화 게시판에 쓴 글이다. 순수한 영혼에게 진실은 더욱 힘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외국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이 영화가 화려하게 선전하기를 기원해본다. 그리하여 더 많은 국민이 진실을 알고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진리를 확인시키는 힘이 돼 주기를.

※ 사족

아, 그리고 전두환 씨에게는 정말로, 누군가 티켓을 보내줘야 한다는 데 100% 동감이다. 가진 재산이 29만원. 그것도 몇 년 전의 일이니 차비도 부족할 텐데.

“본인은 과잉진압에 개입한 적도 없고, 발포명령도 내린 적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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