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도시 전체가 공원이었다
런던은 도시 전체가 공원이었다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7.10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도시 숲 기행]①영국 런던

최근 수년째 인구 증가가 멈춰 버린 광주광역시.향후 2030년이 돼도 인구는 그대로일 것이라는 통계청의 조사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시민의 삶의 질이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외면당하고 유린당했던 숲을 복원하고 공원을 확보하는 것은 삶의 질을 가르는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의소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지난 달 13일부터 열흘간 유럽의 선진 공원 정책과 현장을 답사, 그 결과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런던의 도시 공원. 런던은 도시 전체가 공원이요 숲과 마찬가지다.  
 
탁하고 흐린 템즈강과 달리 하늘에서 바라보는 수도 런던은 온통 푸른 숲이다. 저층의 공동주택들로 인해 조망권이 확보된 것도 그 한 요인이겠지만 사실 런던 시내 곳곳은 도시림이거나 잔디로 둘러싸인 하나의 넓은 공원이나 다름없었다.

고층 아파트나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한국의 수도 서울과는 단연 대조적이다. 빈 땅만 있으면 상가나 아파트 건설에 열을 올리는 우리의 현실과 달리, 영국은 주택가 인근에 반드시 도심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지리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런던은 북위 55° 쯤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서안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한 겨울에도 0℃ 아래로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가 없고, 대신 여름에는 대체로 시원한 편이다. 거의 매일 비가 내려 변덕스런 날씨로도 유명하지만, 나무의 식생에는 더 없는 환경이다. 성인 몇 사람이 껴안아도 부족할 아름드리 고목을 골목길에서도 쉽게 볼 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단 자연환경 뿐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시민들이 가장 친숙하게 찾을 수 있도록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각별한 정책이 그것이다.

나무 한그루까지 인공위성으로 관리

런던시 33개의 자치구 중 런던의 심장부에 위치한 자치구인 웨스트민스터 시티. 18만여명의 시민, 22㎢ 면적의 웨스트민스터 자치구가 관리하고 있는 공원은 모두 106개다. 약 160만㎡에 달하는 하이드 파크·로얄파크 등 과거 왕실이 소유했다 시민에게 돌려 준 4개의 대형공원을 제외한 수치다. 이 외에도 교차로 주변 등 도로공원법 등에 의한 63개의 소규모 자투리 공원이 있다. 몇 분 거리에 공원 하나씩 있는 셈이다.
웨스트민스터 시티 공원담당자는 기자를 템즈 강변의 도심 도로변 자투리 공원이라 할 수 있는 빅토리아 공원(Victoria Garden)으로 안내했다.

▲ 캐리건씨.
“공원 내 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인공위성을 통해 체크하고 있습니다. 나무마다 고유번호를 새겨 식재시기, 시비(거름) 투입시기 등을 기록해 둡니다.”

담당자 데이비드 케리건 씨의 설명이다. 일종의 수목 이력서인 셈이다.

이렇게 인공위성을 통해 관리하는 나무는 대략 1만 5천 그루. 공원 내 수목이 8천 그루, 가로수목이 7천 그루 정도란다. 비교적 보호가치가 있고 수령이 오래 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관리의 그 세심함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도심에 있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점심시간이면 붐빌 정도로 많이 찾습니다. 출퇴근 시민들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가장 쾌적한 휴식처가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숲 사이사이에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한가로운 오후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고사리 손 같은 간난아이를 보행기를 태운 주부, 벤치에서 책을 읽는 학생, 커피 한잔에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의 표정이 더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공원에는 아름드리 수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설계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공원 곳곳에는 역사 속 중요 인물들의 동상이나 상징물이 함께 세워져 있으며 자그마한 벤치들이 마련돼 담소를 나누거나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규모 공연장에서는 매일 점심 무렵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 수백년 된 노거수가 여전히 싱싱함을 자랑하는 런던의 공원들은 숲과 다름없다.
웨스트민스터 자치구의 1년 녹지예산은 약 233만 파운드(원화 약 43억원)다. 자투리 공원 등 공원관리에 180만 파운드, 공동묘지에 53만 파운드를 지출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비용을 공동묘지 관리에 들이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이는 유럽의 장묘문화와 연관된 것인데, 납골당식 가족묘가 도심 한 가운데,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잘 가꿔진 숲처럼 위치에 있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시민단체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트리 트러스트’(Tree Trust)는 시민 모금을 통해 매년 약 5만 파운드(약 9,200만원)를 식재나 공원관리 기금으로 자치구에 기부하고 있다. 벤치에 새겨진 기부자들의 이름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일상화된 기부문화, 쉼터를 내 것처럼 함께 가꾸는 시민의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형의 명예, ‘그린 플래그’(Green Flag)

▲ 도심 가로수도 서너 사람이 껴안아야 될만큰 오래된 아름드리 나무들. 이같은 나무들은 런던 시민의 사랑으로 함께 가꾸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린 플래그’(Green Flag)라는 영국의 공원 인증 제도다. 일종의 명품 평가를 받을만한 우수한 공원을 평가하는 인증 기준으로, 10여년 전부터 새로 도입된 공원관리 개념이다. 최근에는 이 인증을 받기 위한 지역별, 자치구간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설명이다.

시민대표와 관련 전문가, 기업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이 인증에는 8가지의 엄격한 평가 기준이 적용된다.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장소인가(시민활용도) ▲건강성. 안전한가 ▲청결상태(쾌적한 관리 등) ▲환경 친화적인가 ▲역사적 유물 등 전통을 잘 보존 관리할 수 있는가 ▲지역사회 참여정도(지역 공동체 공간으로서의 사회적 책임 유무) ▲마케팅(공원의 특색을 활용한 마케팅 가능성) ▲운영 계획 등 실제 이행여부 등이다.

웨스트민스터 시티의 경우 이런 기준에 해당하는 그린 플래그는 4곳으로 그 중 한 곳은 공동묘지다. 올해 4곳을 추가할 예정이다. 특히 향후 4년 내에는 공동묘지 2곳을 포함해 20~22곳까지 그린 플래그를 받는 것이 목표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에 따른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린 플래그는 시빅트러스트(Civic Trust)'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일종의 명예적  성격이 짙다. 

새로운 과제, 지구온난화

런던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조성된 공원의 잔디가 많은 이용객들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온난화 영향을 어느 지역보다 실감하고 있는 처지다. 기후가 높아지면서 전통수종이 점차 고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법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잔디 교체도 그중 하나인데, 기후변화에 대비해 가뭄에 더 내성이 강한 품종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혹서기에 대비해 지하수 개발 등 충분한 물을 확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지치기로 발생한 폐목이나 벌초로 인한 잔디를 퇴비로 재활용하는 것도 자연 순환 차원에서 새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올해 500t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 같은 런던도 뜨거워지는 지구촌의 영향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