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보고 싶다
달빛을 보고 싶다
  • 곽규호 기자
  • 승인 2007.07.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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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곽규호 편집장

2005년 7월 이상호 MBC 기자의 ‘X파일’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삼성 그룹이 중앙일보 경영진까지 동원해 대선 후보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내용의 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뒤 검찰로부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구형받았지만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2006년 3월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씨가 정부의 한미FTA 추진과 관련, 인터넷 뉴스 매체인 오마이뉴스·레디앙과 인터뷰를 했다. 한미FTA 추진이 한미FTA가 우리 국가에 실익이 있는가,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인터뷰였지만 보수 언론들은 인터뷰 도중에 나왔던 다른 내용, 즉 정태인씨가 청와대의 추진방식에 비판을 가한 대목만을 끄집어 내 갈등을 조장했다. ‘386 아는 것도 전문성도 없다’ ‘386세대가 재경부 앞잪이’ ‘정태인, 노정권 맹비난’ 등의 제목이 등장했다.

실체가려진 X파일·FTA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가 손짓으로 달을 가리켰다. 아이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성철스님 상좌를 지낸 원택스님이 하안거 중에 졸다가 스승에게 혼났는데, 이 때 스님이 던진 말씀이 ‘견지망월(見指忘月)’이었단다. 손가락은 수단이요, 달은 목적인 깨달음이요 진리다. 어리석은 불자들을 경계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언론에서 이처럼 본의를 벗어난 보도가 잇따르자 인터뷰를 했던 레디앙에 다시 글을 실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을 자초한 나를 자책한다’는 제목이었다. 알리고 싶었던 것은 한미FTA의 위험성이었는데 정권을 비난한 것이 됐으니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보내면서 “실제로 내가 주장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봐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이상호의 X파일’ 사건 역시 ‘삼성의 대선자금 의혹’이란 달은 가려지고, ‘누가 어떻게 테이프를 입수했는가’하는 손가락만 나돌다 달빛은 보지 못했다.

국민은 답답하다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박근혜 캠프간에 서로 비리와 의혹을 들춰내는 경쟁이 벌어진 모양이고, 언론도 가세한다.

의혹의 대부분은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재산형성과정과 그 내용에 집중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에 대한 의혹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국정조사 및 특검제 도입을 주장, 본회의장에서는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박 의원은 미국 법원에 제출된 우리나라 검찰 수사기록을 근거로 내세우며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이 이명박 전 시장과 김경준씨가 2000년도에 함께 설립한  LKe뱅크와 이 전 시장이 단 한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 BBK 등 38개 법인 계좌를 이용해 저질러졌다”고 말했다. 처남인 김모씨가 1982년부터 10년 동안 전국의 땅 224만㎡를 사들였다는 소식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명박씨가 서울시장 재직 시 자신 소유 빌딩이 있는 곳의 고도 제한을 풀고, 뉴타운을 개발토록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골프모임에서 당시 포철 회장에게 서울 도곡동의 땅을 팔아달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BBK사건 때만해도 이명박씨는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고급 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물타기에 나섰다. 3일에도 “일반국민이 접할 수 없는 정보가 새나온다.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권력형 음해로 규정했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달을 보라던 엄마는 답답하다. 보도 내용만으로도 단순한 의혹이 아니다. 일부 누리꾼은 당장 검찰이 조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발끈하기도 한다.

해답은 달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달은 뭔가? 깨달음이자 진리요, 진실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부동산 투기꾼이었다거나, 주가조작을 지시 혹은 방조했다면 자격 있는 사람일까. 이를 단순하게 여와 야, 이명박과 박근혜의 싸움으로만 본다면  역시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을 이야기하는 것이요, 본말을 전도한 논쟁 방식이다.

답답한 국민은 달빛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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