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영화로보는세상 - 천년학
[천년학]에선 한복을 그림처럼 곱게 차려입은 오정해가 단연 돋보인다. 한국 토종 미인의 가장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대장금]의 양미경이 매우 전통적인 미인인데, 그녀보다 훨씬 빼어나고 더욱 전형적으로 보였다. 숯검정 치맛자락에 받쳐 앉은 짙은 자주빛 저고리의 매무새와 색감, 동백기름 적신 참빗으로 가지런히 빚어 넘겨 쪽진 머릿결을 따라 동그마한 얼굴에 외씨 눈매를 단정하게 다잡고, 단아한 목선이 어여쁜 어깨선에 살짝 내려앉으며 가녀리게 흐르는 팔꿈치를 돌아서, 백옥 같은 섬섬옥수로 쥘부채를 단단히 매어잡고 살포시 받쳐 든 그녀. 가히 천상에서 내려앉은 조선여인이었다. 그녀가 이 이상 더 아름다울 순 없을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이 우리 영화에서 이바지한 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걸 넉넉히 인정하면서도, 그리 높이 평가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씨받이]에서 그 불만이 싹터 올랐다. [춘향뎐] [취화선]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문화적 품격이 척박한 이 땅에서, 영화는 예술 축에도 끼어주지도 않았던 시절에, 유치한 반공영화 [증언]이나 만들던 감독이, 어느 날 [만다라]부터 [취화선]까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냈기에, 그를 황무지에 피어난 '기적의 꽃'이라고 여긴다. ··· 정일성님이 잡아내는 화면은 참말로 대단하다. 그 장면들이 어찌나 지극히도 아름답던지, 그에게 저절로 숙연한 존경의 마음이 일어난다. ··· 그러나 우리 옛 것을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강박적인 의무감'에 사로잡혀, 의도적으로 아름답게 꾸며대는 억지가 보인다. 그래서 우리 산천의 풍경과 우리 조상의 삶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보이려고 작심하고 달려들어 애를 쓴다. 마치 '관광 한국'을 선전하려는 홍보물 같다.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의식하여 열등감으로 품은 오기가 으르릉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젠 그의 작품에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가 되었을까? 그가 우리 영화에 남긴 커다란 발자취 그리고 내가 그의 작품에서 나누었던 감동과 서운함으로 그 세월에 묵힌 인간적 정감으로 보자면, 그럴 순 없다. 장예모 감독에게 느낀 실망감이나 폴 버호벤 감독에게 느낀 안타까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와 정일성님이 다시 기운을 차려서, 다시 좋은 작품으로 그들의 남은 인생에 아름다운 마무리가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요즘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이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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