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과 굴비상자
민청학련과 굴비상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4.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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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이덕재(본지이사)

2년전 광주광역시의 한 중견건설업체 대표가 안상수 인천시장에게 현금 2억원이 든 ‘굴비상자’를 전달했다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안시장이 문제의 굴비상자 2개를 받은 지 며칠 후 시 산하 클린센터에 자진 신고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는데 시작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점들이 많았다.

우선 안 시장이 알려준 시장 여동생의 집으로 찾아간 건설사 대표의 방문일자와 ‘굴비상자’를 받았다는 안시장과 여동생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안시장이 굴비상자를 보낸 사람을 모른다고 잡아떼거나 건설사사장의 ‘조금 준비했습니다’는 말을 ‘지역특산품으로 알았다’는 점, 수사착수 후 건설사사장에게 ‘수사해도 밝혀지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내는 등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보수언론, 진상규명 외면

이 사건은 당시 ‘차떼기 사건에 이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안’이라는 점에서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을 비롯한 각계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안 시장의 잦은 말바꾸기에 검찰수사는 지지부진했고 무엇보다 보수언론은 흥미위주의 보도에 그칠 뿐 이같은 ‘엽기적 사안’에 대한 진실규명에 소홀했다. 결국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안 시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대중 · 노무현 정권과 관련된 이른바 각종 ‘게이트’사건에 대한 집요하고도 악랄한 보수언론의 보도행태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선 ‘2억굴비상자’ 사안에 대한 보수언론의 외면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들 언론이 가진 검증잣대의 편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안이었다.

다소 길게 2년 전의 ‘2억굴비상자’ 사건을 언급한 데는 보수 언론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 이외에 또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돈을 건넨 광주 건설사 대표 A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A씨는 재판부에 의해 법정구속됐고 2억원은 몰수당했다. 재판부의 판시이유다. “계열사인 B건설 본사를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전한 후 송도특구 등의 아파트분양권을 따내기 위해 안 시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2억원을 준 행위는 기업인으로서 부정부패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런데 A씨는 공교롭게도 ‘2억굴비’ 사건으로 구속 수감 당시 국무총리산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유신정권시절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중 학생시위에 가담해 실형을 받은 사안과 관련, 명예회복대상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20대 청년시절 A씨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독재와 부패의 고리를 끊는 것이었을 게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살벌한 유신정권에 맞서 투옥과 제적 등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에 나섰고, 그같은 ‘항거’에 대한 자부심을 가슴에 담아왔기에 30여년이 지난 지금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선고이유만 보면 그는, 그가 그토록 청산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 모습으로 ‘변절’해 있었던 셈이다.

민주화세력의 위기-초심의 상실

A씨 특정개인을 지적하고자 꺼낸 얘기는 결코 아니다. 지금 곳곳에선 ‘일부 386정치세대의 무한한 변절’을 말한다. 민주화세력의 위기라고도 한다. 민주화세력이 스스로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별다른 성과 없이 놓쳐버린 아쉬움의 표현이다. 새로운 대안도 고민 않고 민중들의 힘든 삶에 대해서도 애써 눈감는 ‘권력화된 386’ ‘운동권 정치인’들이 초래한 위기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꼭 그들만의 책임일까. 이전의 열정과 희망을 버리고 기득권진영에 적극 투항하고, 초심과 상식에 무덤덤해진 ‘그때 그사람들’의 무감각에는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보수언론은 현재의 잣대로 민주화세력을 함부로 폄하하거나 재단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동조해 온 나의 모습에서 한없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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