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탑]의 드높은 인기, 권선징악에 갇히다!
[하얀 거탑]의 드높은 인기, 권선징악에 갇히다!
  • 김영주
  • 승인 2007.03.15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주의 영화로보는세상 - 하얀거탑

[하얀 거탑]이 20부로 끝을 맺었다.  TV드라마를 참 오랜만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보았다.  마지막 회에는 눈물까지 글썽임서 보았다.  유치하게시리 -.-;; .  그러나 10부를 넘어서면서 현실적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져갔다.  가난한 인권변호사가 내부고발자의 증거를 확보해나가면서 재판을 이겨나가는 모습은, 드라마에 긴박감을 주려면 일부러 그 대립각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리 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 비하면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진다.


조직폭력배만 조직이 강렬한 게 아니다.  이익과 권력이 드높은 집단일수록 그 매운 맛은 강렬하다.  그 종합병원은 이익도 엄청 많고 권력도 드높다.  그 이익과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에 보이지 않는 의리와 관행이 있기 마련이다.  그 큰 이익과 높은 권력을 포기하고 나아가서 그 의리와 관행을 깨면서까지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차암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단단한 조직에서 살아본 사람은 체험으로 뼈 속 깊이 알고 있다.  그 옳고 그름보다도 ‘조직의 안전과 평화’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하얀 거탑]에선 이 드높고 단단한 거탑에 박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법정의 증인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색깔있는 삶을 찾는다.  그러나 색깔있는 사람은 조직생활을 잘 꾸려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살아남지 못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기보다는, “색깔있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색깔없는 자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 조직에 충실하면 자기 자신의 색깔있는 삶이 희미해져간다.  딜렘마이다.  색깔있는 삶이 자기의 개성을 만끽하는 대신에, 조직의 안전망을 포기하고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는 건 색깔있는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다른 조직들에게 전파되어 사방팔방으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부고발자에게 세상이 왜 그렇게 썰렁해지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몸소 경험한 인생살이만을 되짚어 보면, 세상은 그리 ‘권선징악’하지 않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선과 악을 딱 가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선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권선징악이 우릴 맴돌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 자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선악의 이데올로기를 강렬하게 대립시켜서 기존 질서의 안정을 도모하는 세뇌교육으로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 뼈 속 깊이 박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내 자신의 이루지 못한 욕망을 위로받고 싶은 자기 보호본능이나 자기 위로용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도 같다.  자기를 ‘착한 사람’이라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보면 인간이라는 게 참 어리석고 비겁하지만, 그게 실제 인간 세상에서 흔한 일이고 내 자신도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잘난 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깊은 수렁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앞 글에서 까페여인에게 상당한 포인트를 주었고,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 어떤 썸씽을 만들어내어 스토리가 긴박하게 재미있어지기를 상당히 기대했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끝나버려 참 서운했다.  방영횟수를 10회쯤 더 늘려서 그녀가 얽혀들어 사건을 좀더 화끈하게 끌고 가고, 장준혁의 죽음이나 추락을 좀더 천천히 차분하게 끌고 갔더라면 현실적 리얼러티를 훨씬 잘 살려낼 수 있었을텐데 ··· .  하지만 그 동안 허깨비 같거나 질질거리던 TV드라마가 생생한 현실적 리얼러티로 긴박한 파워게임의 스릴을 펼쳐 보여준 재미를 한껏 맛보았다.  조연들이 돋보여서 더욱 좋았다.


TV가 아무리 대중의 말초적 감각에만 매달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TV야 대중을 너무 졸로 보지 말라!  너희들이 대중을 졸로 보니까, 우리 국민수준도 졸로 보이잖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