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은 먹지에 '하나됨'메시지
엷은 먹지에 '하나됨'메시지
  • 곽규호 기자
  • 승인 2007.03.10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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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용 개인전 '연리지'...14일까지 롯데화랑
▲ 허달용 작 '연리지'
지난 8일부터 광주 롯데화랑에서 한국화가 허달용씨의 네 번째 개인전은 상큼하고 유쾌한 전시라고 하고 싶다.

1997년 첫 번째 전시를 가진 이후 10년만에 다섯 번째 개인전이니 자주 전시를 한 화가는 아니다. 다작의 작가는 아니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의 사회적 인생 역정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광주미술인공동체, 민예총 등의 핵심 일꾼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개인작업에 몰두할 시간을 다른 데 쏟았던 것이다.

사실 지난 해 광주전남한미FTA 반대 대책위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아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활동하던 그가 언제 이번 전시(31점을 내놓았다)를 준비했는지가 궁금할 정도인데, 본인은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두달을 꼬박 그림만 그렸다는 설명이다. 잠은 못잤어도 행복했더란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은  ‘연리지’연작들이다. 연리지는 두 그루의 서로 떨어진 나무가오랜 세월 풍상을 같이 지내면서 한 몸으로 어우러진, 전설적인 나무로 실제 연리지를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와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됐다는 데서 연리지는 부모 자식간, 혹은 남녀간의 끊을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을 상징한다.

민중미술에 천착했던  그가 이번에는 ‘사랑’에 눈을 돌린 셈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붙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어디 사랑만이랴. 그의 이념 성향을 아는 이들은 곧바로 헤어진 남북간의 이산가족 상봉이나, 더 나아가 통일까지도 염두에 둔 작품 제목임을 눈치챌만했다. 작가도 이를 숨기지 않았는데, “앞으로 2~3년은 연리지 연작을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명제도 심상치 않지만 먹을 풀어 헤치는 내공이 깊다. 먹을 칠했는지, 맹물을 발랐는지 눈치채지 못할만큼 엷은 먹빛의 미세한 차이로 하늘과 땅이 갈리고, 강물과 강변도로가 갈리며, 논밭과 시골길이 갈린다. 이쯤 되면 먹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물을 조절하는 도가 텄다 할만하다.

허달용은 의재 허백련의 아우였던 목재 허행면의 손자로 가문을 이어 화업을 업으로 삼는 집안이다. 그는 “의재 할아버지께서는 ‘먹을 금 보듯 하라’고 하셨다”고 전한다. 농묵보다는 담묵이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조부의 엄명이 화업의 소신으로 자리한 까닭이 깊다.

담묵과 발묵으로 수묵의 깊이를 한껏 보여주는 그의 작품이 그래서 유쾌하고, ‘사랑’같은 시덥지않을 듯하면서도 의미깊은 화제가 상큼하다.

전남대 미술과 출신인 그는 올해 광주민예총 대표를 맡게 됐다. 잠을 덜 자더라도 작품 완성에서 기쁨을 느꼈다는 그가, 혹여 단체 대표생활 과정에서 또다시 긴 창작의 침묵에 빠지지 않을까 저어되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근심일 듯하다. 전시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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