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광주 건설’과 박 시장의 리더십
‘잘사는 광주 건설’과 박 시장의 리더십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3.10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보진영 뿌리깊은 불신...민의 조정력마저 차단
▲ 지난 8일 새벽 1시 30분경 광주시청 3층 시장실 앞에서 농성중이던 용역노동자들을 시청 직원들이 강제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직원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광주시가 강제해산에 맞서 속옷 시위까지 벌이며 저항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끝내 청사 밖으로 내 몰면서, 박광태 광주시장의 리더십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광주시의 민의 수렴 방식 때문이다. 사태가 이런 상황까지 이르도록 사회적 갈등에 대한 어떠한 조정력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청소와 조경, 청사관리 등에 종사하는 시청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계약기간에 따라 주기적인 실직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 광주시가 나서서 고용불안을 해결해 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아무런 화답이 없었다.

손동신 민주노총 광주전남공공연맹 사무국장은 “담당 부서진과의 대화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문을 닫아 놓고 회피성 말만 반복해 왔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대립된 상황에서 갈등해결의 새로운 창구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러면 창구는 있었을까. 지난 8일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오기까지 용역직 노동자들의 문제로 광주시장과 얼굴을 마주한 것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부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8일 임의진 행정부시장이 노동계 대표들과의 면담을 자청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화 되고 있는 데 따른 조치였다.

민주노총 한 간부는 “뜻하지 않는 반응이여서 내심 실마리를 찿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의 불가 방침을 재차 통보하는 자리에 불과하고 말았다. 그는 “그저 황당했다”며 “그렇다면 왜 만나자고 했는지, 왜 지금까지 단 한번 만나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 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반라의 몸으로 박 시장의 집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지난 7일 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공무원들은 일제히 말을 아꼈다.

▲ 광주시는 강제해산 중지를 요청하는 민주노동당 기초 의원들의 요구마저 물리친 뒤, 이들 의원들까지 강제해산에 나섰다. 강은미(서구), 이승희(북구) 의원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강제 해산에 맞서고 있다.
해프닝은 극적으로 마련된 임의진 부시장과의 면담자리에서 한 차례 더 벌어졌다. 사태 수습에 나선 광주시는 새로운 업체로 선정된 용역업체 대표와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화통화까지 했다는 용역업체 관계자는 밤 12시가 되도록 연락 두절이었다. 용역업체 관계자가 감히 광주시를 상대로 농락하고 있는 꼴이었다.

물론 당시 해프닝을 용역업체의 사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날 저녁 부시장이 하는 일이라고는 강제해산 명령을 내리기 위해 비상 대기 중이던 직원들을 소집하는 일 뿐이었다. 실무부서장도, 행정부시장도 말을 내 놓지 못하는 광주시. 갈등 해결의 시스템이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많은 시민들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을 박광태 광주시장의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시장과의 불편한 관계는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박 시장이 법정 구속된 것이다. 2004년 1월 박 시장이 법정 구속되자,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일제히 박 시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박 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6개월 만에 시장 업무에 복귀하면서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박 시장은 자신의 시장직 사퇴운동에 대해 대단히 불쾌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종의 ‘괘씸 죄’다.

▲ 민주당 박광태 광주시장 당선자가 개표 중간결과 압승이 확실시 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성을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
지난해 5.31선거는 박 시장의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 계기였다는 평가다. 국회 산자위원장 출신 3선의 경력은 광주 경제 살리기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경제계의 폭넓은 지지를 등에 업은 데다, 사실 여러 지표에서 괄목할만한 평가를 얻고 있었다. 13만 4천개 일자리 창출 공약은 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재선 가도에 성공하면서 민주당내 박 시장의 위상도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높아졌다. 당 부대표직이 주어지기도 했다. 광주시의회 개원 초 의장 선거 파동과 지난해 하반기 사상 유례없는 시의회 행정사무감사 거부 소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민들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달리 보면 박 시장의 고집과 장악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박 시장과 노동계와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2004년 9월경 박 시장이 예정에 없이 지역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무죄 선고 직후였다. 시립 예술단과 환경위생노조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 놓는 등, 전례 없는 화해 분위기가 싹트는 듯 했다.

박 시장이 민주노총에 공을 들인 것은 내심 노동계로부터 산업평화 선언을 이끌어 내기 위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무위로 그쳤다. 반면 지역 한국노총과는 각별한 관계가 유지돼 왔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2005년 대법원 무죄판결에 대한 환영 성명에 이어, 지난 5.31선거에서 박 시장 지지선언까지 내 놓기도 했다.

▲ 광주시는 지난해 11월 22일 광주시청 앞에서 개최된 한미 FTA 반대시위에 대해, 어지럽혀진 시청 앞 현장을 며칠째 그대로 방치하며 초 강수로 맞서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해 11월 22일 한미 FTA반대 시위는 진보적 시민사회와 갈라서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광주시는 초 강수로 대응했다. 무엇보다 박 시장의 의중이 가장 컸다. 기자회견을 통해 ‘만행’으로 규정지음과 동시에 폭력시위를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거리 곳곳에 내 걸었다.

박 시장은 아예 시청사 파손 현장을 십분 활용 해 전시효과까지 노렸다. 파손된 시청사를 무려 보름 가까이 방치해 두는가 하면, 일부 시민단체들을 내세워 현장답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어 민-형사 고발에 이어 2억 1,800만원의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지역의 여러 원로들이 대 시민 화합차원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을 요청했지만 거듭 무산되고 말았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이번 청소용역직 노동자 강제해산 사태를 박 시장의 ‘자존심’ 싸움으로 규정했다. 이제 거칠 것 없다는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카리스마가 커질수록 자칫 독선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단체장의 중요한 덕목이다. 민의에 대한 시의 조정력까지 마비된 것이 아닌지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