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진흙탕에 묻힌 '하얀 거탑'의 권력과 암투
[하얀거탑] 진흙탕에 묻힌 '하얀 거탑'의 권력과 암투
  • 김영주
  • 승인 2007.02.16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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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세상 - 하얀거탑(MBC 주말드라마)

▲ MBC주말드라마 -하얀거탑.
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 남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지간해선 TV드라마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터라 일부러 관심을 꺼버렸다.

우연히 일요일 아침에 일본판 <백색 거탑>을 보게 되었다. 확 땡겼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본판 원본소설과 만화가 있단다.

한국판 <하얀 거탑>이 훨씬 재미있다는 말이 무성하였다. 이미 10회까지 방영되었단다. 만사를 접어두고 이미 방영된 <하얀 거탑>을 찾아보았다.  일본판보다 한국판이 여러 모로 두드러진다. 한국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일본판도 재미있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판을 보고나니 일본판은 더 이상 땡기지 않았다.( 설사 그렇더라도, 한국판이 일본판 거탑의 지붕 위에 다시 몇 층을 더 높였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하겠다. ) 음악이 훨씬 드라마의 긴박함을 몰아쳐 잘 살려낸다. 수술장면이나 병원분위기나 엑스트라의 작은 터치가 훨씬 실감나게 정성스럽다.

좋은 작품은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옷자락의 펄럭임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스토리 흐름과 흐름 사이를 메꾸어 가는 잔물결마저도 일본판보다 훨씬 매끄럽다. 작은 틈새까지도 연출자의 정성이 깊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캐릭터에 연기자가 매우 적합해 보인다. 조연들의 연기도 아주 자연스레 거의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지만, 중심인물들이 주어진 캐릭터에 더 이상 어울릴 배우가 없겠다할 만큼 적합해 보인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두드러져 보이는 건 그 연출력이나 출연배우의 연기가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드라마에 펼쳐져 엮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의 현실적인 리얼러티가 매우 생생하기 때문이다. 비록 종합병원에서 의대교수 의사 간호사 환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다양한 사연을 배경으로 하면서 인간사의 진흙탕 싸움을 그리고 있지만, 실은 인간이 여럿이 모여 사는 조직사회에는 그 어느 곳에나 많든 적든 이런 모습을 갖고 있다.

온 세상이 경쟁으로 뼈를 깍아내는 지금 우리 사회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의 겉모습이 다르고 그 농도가 다를지언정, 이런 모습은 바로 내 곁에 있고 바로 내 주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이 진흙탕에 얽혀든 듯이 실감나게 빠져들었다.

▲ 드라마 속 한장면.
아직 드라마의 끝을 보지 못했지만, 일본판에서는 ‘권선징악’으로 끝난단다. 현실 세상은 거의 대체로 ‘권선징악’이 아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권선징악’이라기보다는 결국은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더 정곡을 찌르며 다가오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애당초 출발에서부터 ‘권선징악’으로 끝날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그게 이 드라마의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많이 갉아먹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거기에 얽혀든 인물들의 행태를, 5년 10년으로 쭈욱 늘여서 천천히 진행시키며 그 일일마다 굽이굽이 사이사이 틈새 틈새에 끼어든 구구절절한 사연을 낱낱이 그려 넣는다면, 그것은 훨씬 더 생생한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담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드라마 영화 소설들이 모두 어떤 사건과 인물의 선악과 시비를 극단적으로 몰아서 일부러 드라마틱하게 엮어내어 그 강렬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부추긴다는 걸 생각하노라면, 그 어떤 드라마 영화 소설보다도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난 드라마 소설 영화 만화에서 시나리오의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깐깐하게 따져보기 때문에, ‘선악의 대립’이나 ‘삶의 아름답고 씁쓸함’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몰아세우며 어정쩡한 ‘권선징악’이나 어줍잖은 똥폼을 잡고 싶어하는 위선과 허세가 느껴지면, 흥미를 많이 잃는다.

내가 한 시절 일본만화에 많이 열광했던 이유도, 거기에 비록 ‘조작된 리얼러티’나 ‘환타지 리얼러티’가 뒤섞여 있을지라도, 그 바탕에 ‘현실적으로 생생한 리얼러티’가 탄탄하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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