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미국군과 인민군
6.25 당시 미국군과 인민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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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박지동 한국언론법학회 감사
1945년 가을에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일제를 물리쳐준 해방군이면서 동시에 일제의 식민지 조선을 계승하여 종속 통치하려는 야망을 가진 점령군이었다. 미국군에 대한 이런 판단은 간악한 일제의 침탈과 학살에 시달려온 한반도의 남북 자주독립세력으로 하여금 제2의 점령군을 물리치려는 저항 투쟁과 반침략 전쟁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6.25 발발 전인 1948~49년에 걸쳐 38선에서는 일제 때의 일본군 토벌대에서 활약했던 김석원 등이 이끄는 전투부대가 미 점령군의 무리고 재무장하고 해주-개성-양양 등지를 여러 차례 공격 살상함으로써 이승만의 거듭되는 ‘반공 북진통일 ’협박 구호와 함께 상대방에게 전면적인 반격의 구실을 제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멀리 태평양 건너편의 자국 영토로부터 한(조선)반도를 선제 점령한 미군과, 자기 영토에서 식민지 노예상태로부터 자주독립을 위해 조직된 북의 군대 중 어느 쪽이 ‘선제공격자(침략자)’였을까는 자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친일 친미세력에 의한 반공교육과 반북 종교세뇌는 상대방을 ‘참략의 악마’로 규정하여 장기간에 걸쳐 육체적 정신적으로 훈련 결집시켜 나가는 바람에 동포 형제자매들 간의 증오, 분열, 적대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니 일-미 제국주의 세력과 구명도생(苟命徒生)한 친일파 언론의 민족분열 획책과 민중 수탈체제 구축의 야망은 큰 효력을 본 셈이다.

돌이켜보면 침략자들이 약소국을 쳐들어갈 때는 언제나 상대방이 먼저 공격해왔다는 구실거리를 만들어 사방에 알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제가 조선반도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기까지 숱하게 협박한 배상책임 사건들과 만주사변-노구교사건 등 중국침략의 이유를 모두 상대방에게 돌린 술책들이 바로 교활한 책임전가 왜곡선전 수법이었다.

미국의 전쟁 전략도 항상 그랬다. 그렇게 해야 자국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전쟁에 적극 지지하게 만들고 세계의 인심을 자기편으로 유리하게 조장시켜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6.25 전쟁 때에 미국이 공중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전 국토를 초토화시키며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전국의 농가와 사찰 건물을 인민군을 죽이기 위해 불태워버림으로써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잔인무도한 악마의 짓을 한 것을 봐도 두 집단의 ‘침략자냐 정당방어자냐’에 대한 대답은 자명해진다.

그래도 전쟁 후 전국의 학교와 교회에서는 물론 반공대회가 열릴 때마다 ‘모든 학살과 모든 파괴는 몽땅 북측의 남침 때문이었다“면서 ”미군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빨갱이새끼‘ ’북을 지지 찬양하는 악마‘라며 죽일 듯이 윽박지르고 감옥에 처 넣었다.

침략 수탈자들은 생산근로대중을 노예처럼 억압 멸시하면서도 그들의 노동력을 직간접으로 수탈해야 불로소득 또는 자산증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머슴으로 소유하려고 한다.

자주 평등 민주 통일의 주창자들을 악법을 휘둘러 한사코 근로자들과 분리시키려고 발광하면서도 외세든 내부 독재자든 폭력적 권력과 실정법 맹종의 검 판사에 의한 고문, 감옥행 판결의 공포에 호소하고 신이라는 허상까지 이용하여 근로민중의 순종을 강요하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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