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피할 길 없으면 즐겨라
경쟁, 피할 길 없으면 즐겨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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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경주 경담문화재보존연구소 이사
요즘은 시험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수능이란 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판이다. 말 그대로 대학에 들어가서 학과목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파악하는 시험이라는데 어찌 보면 꼭 해야 할 공부인 것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조금 우스운 모습이기도 하다. 기존의 다른 공부들을 죽어라 해서 시험을 보는 것도 대학에서 공부 할 때 필요 할 것인데 꼭 따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가 대학에 막 들어갔는데 철학과 교수님께서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대학은 혼자서 공부하는 곳입니다”란 말이었다. 알아서 도서관에 가고 알아서 논문도 찾아보고 저 혼자 알아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한다. 군대도 저 혼자 알아서 결정해서 갔다 오고 예쁜 여학생에게 염사를 두었다가 마음 아파하고 가슴 떨리고 하는 것도 모두가 저 혼자 알아서 하는 곳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는 것도 저 혼자 알아서 해야 하며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반성도 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제 너희는 성인이니 네가 한 일과 행동은 네가 책임을 지고 권리를 갖는다는 뜻일 게다.

대학에서 해야 할 공부를 할 수 있게끔 기본 내공을 길러 주고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일인데 이제는 가만 보면 이어령 선생 말씀처럼 도대체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모를 문제로 우리 아이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지 모르겠다.

음악감상이 수행평가 과정이라니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봄에 심각한 외도의 길로 빠졌던 기억이 있다. 제도화된 교육현장, 과거 봉건사회나 근대 이전의 세상에서 나아가야 할 자기의 진로가 결정 된 듯 한 현실이 지겨워서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나나 별짓을 다해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라는 학과 공부는 멀리하고 다른 책들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본론’, ‘근대 이후 이청준까지 한국문학 독파’ 등이었다. 친구들하고 같이 그 길로 빠졌다. 날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되지도 않은 얘기로 거품 물고 싸우고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만약 수능이라는 괴물이 있었으면 어쨌을까 생각이 가끔 든다.

엊그제는 딸아이가 음악회를 가자는 것이다. 순간 묘한 감동 같은 게 밀려오고 생활 속에서 찌들다가 한순간 풀어놓고 좋은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길 요량으로 음악회장엘 갔다. 한 시간 전쯤에 도착하여 딸아이와 근사한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평소 듣지 못한 그 중학생 시절의 여자애들 생각도 들어보고 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있다가, 연주회장엘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시작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학생들이 많이 와서 객석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다. 단원들이 나오고 박수소리 들리는 듯 치는 듯 단원들은 조용해질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고 그러기를 10분여 포기한 듯 음악회는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학교 수행평가에 필요한 음악회 관람이라 한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이제 음악회도 학과 공부를 위해서 다녀야 하고 그 음악회도 점수를 받기 위해서 감상문도 쓰고 누가 왔는지도 요약해야 한다. 나는 열심히 받아 적는 딸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라고. 벌써부터 경쟁이 시작되었다.

사회가 그런다면 세상이 그런다면 경쟁 할 수밖엡 강박관념 갖지 말고 즐겨라. 하기 쉽고 자극적인 것들 조금 있다 하고 하기 싫고 꼭 해야 하는 재미없는 일을 이제 품에 안으라고. 물론 꼭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목표를 위한 것일 때 말이다.

시험은 어딜 가도 보는 거지만 항상 떨리는 것은 마찬가지고 후회도 뒤따른다. 죽어라 뭔가를 해보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그것이 죽도록 내가 해보고픈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우리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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