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라디오스타
한 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영화칼럼니스트 김영주 교수가 이번 호부터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 육자배기 가락과 같은 그만의 독특한 해설에서 영화 자체보다, '문화의 총체'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읽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
▲ 두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 | ||
영화를 만드는 품새도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재밌게 보았다.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잘못 그려낸 게 많이 거슬렸지만, 영화를 보면서 조선시대의 역사를 배우려는 건 아니니까 너그러이 이해하고 보자면, 감독이 자기의 개성적인 양념을 치고 버무리는 솜씨가 우리나라 관객들의 입맛에 잘 맞추었고 틈틈이 여기저기에 맘에 드는 장면들이 있기에, 조금 서운한 대로 괜찮은 영화였다.( 1200만 관객이 몰린 이야기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
이렇게 난 이준익 감독을 그리 낮추어 보지도 않았고 별로 주목하지도 않았기에, 그 자자한 소문을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여겼다.
[타짜]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쳤고, 외국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프레스티지]를 보았지만 이야기 소재로 삼기엔 많이 허전했다. 뒤늦게야 [라디오 스타]를 보았다.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영화에 많은 여운이 남아있고, 그동안 이준익 감독을 심드렁하게 보았던 것도 미안했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서 가진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이준익 감독이 이런 씁쓸한 이야기에 깊은 감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가 무명시절에 많이 고생했던 모양이다.( 그 찬란한 스타들의 빛 그늘 아래 더욱 그림자 짙은 ‘영화의 막노동판’에서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 . )
두 주인공, 박중훈이 항상 그렇듯이 철없이 텁텁한 모습을 잘 보여 주었고, 안성기는 고지식하고 상투적이다가도 대목대목 참 괜찮은 모습을 잘 그려냈다. 그러나 이 두 주인공보다는 조연들이 훨씬 돋보인다. 영월 읍내나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털털하고 소박해서 좋았지만, 짜장면 배달총각 · 방송국 박기사 · 동네 양아치 락밴드 멤버 · 청록다방 김 양 등이 그려내는 모습은 더욱 풋풋하고 질박하다.
이렇게 좋은 영화이지만, 스토리에 너무 뻔한 권선징악이 깔려 있는 게 좀 유치했고, 우리 락음악에는 미국 락음악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한국적 센티멘탈리즘’이 끼어들어 있음에도 그 차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상투적으로 끌고 가면서, 스토리와 그 분위기가 옛 그 시절의 감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보인 흠이 많이 거슬리다.
그러니까 박중훈과 안성기가 락음악으로 연결지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외국문화의 그 어떤 분야이든,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유럽이나 미국의 사회적 배경과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쪽으로 변질되어 가는 그 맛을 알아야,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시대에 젖어든 우리의 감성적 정서에 가까이 다가온다. )
그래서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더욱 그립다. 노래방 기계에 밀려난 밤무대 밴드의 초라한 인생 뒤안길을 처량하게 그려낸다. 지금은 A급 스타가 되었지만, 이 영화에선 완전 초짜 조연배우인 순박덩어리 드럼쟁이 황정민. 그 초라함을 과묵하게 삭여내는 기타쟁이 이얼. 뺀질거리며 얄밉도록 이기적으로 노는 전자오르간쟁이 뺀질이.
소주잔의 짙은 시름에 추욱 쩔은 채 현인의 ‘서울야곡’에 실려 스러져가는 딴따라할아범. “봄비~를· 맞-으~며 충무로· 걸어갈· 때-- 쑈~윈~도· 그라스엘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 · · ” 그리고 어느 캬바레에서 ‘사랑밖엔 난 몰라’를 심수봉보다도 더 감치게 부르는 오지혜의 노래로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이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기쁨은 높아야 제 맛이고, 슬픔은 깊어야 제 맛이다. [라디오 스타]를 보거든, [와이키키 부라더스]도 꼬옥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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