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계약, 너 마저도…
조달계약, 너 마저도…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6.09.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까다로운 조건 첨부, 꼬리표 수주 방식 등
감사 제외되는 허점 노려 곳곳 '구멍'
신설학교 8곳 교구 모두 조달청 구매

이번 신설학교 교구 납품 비리에서 보듯 국가기관에 의한 조달구매 신뢰도에 '구멍'이 뚫림에 따라 제도보완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달청에 의한 조달구매 계약은 각종 감사대상에서도 제외될 만큼 공신력을 인정받아 왔으나 이번에 불거진 교구납품 리베이트 의혹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공교롭게도 문제가 불거진 신설학교 모두 조달구매에 의한 계약이었던 것.

전남지방경찰청은 7일 광산구 S중학교 기자재 구입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건넨 11개 업체의 압수장부를 근거로 업자들을 추궁한 결과, 일부 다른 학교에서도 10~15%의 리베이트가 건네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부 업자들이 서구 W중에도 1500만원 규모의 사례비를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 동안 '안전지대'라고 생각해왔던 국가기관의 조달구매에 비리의 '고리'가 숨어 있었던 것.

   
▲ 구멍난 조달계약.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던 교육청의 주장과 달리 조달계약을 했던 몇몇 신설학교에서 리베이트가 건네진 상황이 포착됐다. ⓒ김경대
그렇다면 "거의 모든 학교가 조달구매를 통해 구매하고 있는 만큼 비리의 소지란 있을 수 없다"는 교육청의 호언에도 불구, 조달구매 비리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납품업자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품에 새로운 조건을 한두 개 첨가하는 식으로 가격을 부풀린 다음 로비를 통한 꼬리표 수주를 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 물품의 기능과 상관없는 공정이 추가되면서 가격 역시 튄다는 것.

까다로운 조건과 비상식적인 가격에 일반업체가 쉽게 응찰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이미 입찰 전에 "모 중학교 것은 어디 업체에서 로비해서 땄다더라"는 식의 묵계가 업계관행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학교장이나 행정실장을 상대로 한 업체들의 로비는 이미 알려진 바고, 이러한 '어리숙한' 과정을 묵인하는 조달청에까지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일선 학교의 한 교사는 "조달청에도 분명히 분야별 전문가가 있어 업체가 제출한 사양서를 검토해보면 불필요한 공정이나 부풀려진 가격을 집어낼 수 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구협회나 업체, 교육청과 사전교감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몇 몇 사람의 부정이 아닌 조직 간의 거대한 부패 고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한 납품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일괄 공동 구매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달리 생각하면 로비의 통로가 일원화된다는 것 외에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소 비관적인 답변이긴 하나 금품로비에 길든 교육계 전반의 반성과 자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로비가 끼여 들 여지는 충분하다는 우려다.

조달계약이 대부분의 감사에서 제외되는 것도 문제. 국가기관에 의한 구매라 감사 또한 서류 심사에 그칠 뿐 납품 기자재의 검수는 생략되기 일쑤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 이러한 관행을 악용해 일부 업자들은 애초 조달청에 제출한 사양서대로 제품을 만들지 않는 편법으로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근 전교조 광주지부 부지부장은 "조달구매가 만능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꼼꼼히 챙긴 수의계약이 오히려 예산절감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감사에 제외된다는 이점을 들어 가격이 비싼데도 무조건 조달계약을 하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정편의적인 발상도 문제지만 재량권자의 인식전환이 절실하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교육계 일각에서는 조달계약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함께 학부모, 교사 등이 참여하는 '기자재 구매 소위원회' 등을 구성, 절차를 투명화하고 구조적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