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 개선? 철거는 서민 죽이기"
"주거환경 개선? 철거는 서민 죽이기"
  • 안이슬 기자
  • 승인 2006.08.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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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이야기]몸 다치고…집 뺏기고…천막생활
▲ 대한주택공사의 "주거환경 개선사업" 공사장 인근에 세워진 천막. 양림동 철거민들은 좁은 천막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안이슬 "벌써 4년8개월째네. 이제 세입자까지 15세대만 남아 투쟁을 계속하고 있어. 일단 먹고 살아야하니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 내 나이도 벌써 쉰이 다됐어. 참말로 징헌 싸움이여." 광주시 남구 양림동 철거민 조덕임(49)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겨울, 주택공사의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인해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된 양림동 철거민들은 현재 백운동 고가도로 인근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한 평 반 남짓한 좁은 천막 안과 밖에는 이들의 격앙된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주는 플래카드와 사진들이 가득했다. ▲ 철거 직전까지 주민들은 "감정거부"를 대문 앞에 붙이고 철거를 위한 보상금 책정을 거부했다. ⓒ안이슬
"말만 주거환경 개선사업이지, 서민들 죽이겠다는 정책 아니오? 공기업이라는 것들이 해놓은 짓 좀 보소. 내 여기 증거자료가 다 있으니까 누가 봐도 잘못됐다는 것을 알 것이오."

"하도 징해서 이젠 눈물도…."

양림동 철거민 대책위원회 총무인 조 씨는 얼마 전 고충처리위원회에도 찾아가 그간 모아온 자료를 보여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녀가 모아온 자료에는 공시지가와 보상액이 다른 가구들과 사업에 반대했던 이들의 서명들, '감정거부'를 대문 앞에 붙이고 찍은 주민들의 사진 등이 가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8차선 대남로하고 2차선 양림로 중에 어디가 보상을 더 많이 받아야겠소? 당연히 대남로지. 그런데 주택공사에서 양림로 부근에 땅을 사놓고 그 땅들만 보상액을 높게 책정했단 말이오. 한마디로 땅 투기를 한 거야. 고충처리위원회에 가서 자료 보여줬더니 아무 말도 못해. 기가 막힐 노릇이지."

더운 천막 안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펼쳐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녀는 잠시 말을 쉴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싸움을 하는 동안 다친 사람도 많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 자식들에게 보상금 빼앗기고 양로원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약 먹고 죽은 사람도 있어. 실갱이를 하다 다쳐서 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고…. 병원비는 하나도 보상 못 받았어. 하도 징해서 이젠 눈물도 잘 안 나네."

▲ 철거 당시 상황을 사진에 담아 천막 안과 밖에 걸어 두었다. ⓒ안이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가 가슴을 퍽퍽 쳤다.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배성룡(77) 대책위 회장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집 빼앗긴 설움을 어디다 비하겠는가? 사업 진행한 사람들은 서민들 생각을 하지도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우리를 들었다놨다해. 하도 억울해서 시청 앞에 천막도 쳤지. 그런데 더 깝깝한 일이 생겼단 말이오." 시청 앞 농성 중 과잉제지로 전치 6주…돈 없어 재진료도 못받아 "시청 앞에 천막을 쳤는데 공무원들이 술을 먹고 밤새 나와 괴롭혔어.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시청이니 우리 것도 된다'고 소리쳤는데 씨도 안 먹히더라고. 밤중에 오갈 데도 없으니 옮기더라도 하루만 자고 옮기겠다고 했는데…." 김시차(74)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시청 앞 천막농성 중에 부상을 당한 김근식(85)할아버지의 부인이다. ▲ 천막 농성중 공무원의 무리한 제지로 부상당한 김근식 할아버지와 부인 김시차 할머니의 모습. 내외는 현재 친척이 잠시 비운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안이슬
"시청 앞마당에서 잠잔다고 자정쯤에 물 뿌리고 침을 뱉습디다. 한 공무원이 '13억원을 줘도 저런다'고 소리치면서 달려들더라고."

천막이 부서지고 철거민들은 시청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깊은 밤 다른 곳으로 다리를 옮기기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우리 집 양반이 담요에 앉아 있는 데 공무원이 끝을 잡고 홱 내팽개쳤어. 노인이 무슨 힘이 있는가. 공중에 붕 떴다가 그대로 머리부터 떨어졌지. 그래도 그때는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조금 움직이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꼼짝을 못해."

병원에서 할아버지에게 내린 진단은 쇄골 골절과 뇌진탕. 전치 6주가 나왔지만 '추후에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없을 경우'에 나온 진단이다. 사건 이후 6주가 지나 다시 진단을 받아야 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

"병원에서 진단받으러 다시 나오라고 연락이 왔어. 돈도 없고, 두 늙은이 사는데 내가 업고 갈수도 없고, 재주가 없어 못가겠다고 했지. 지금은 친척이 집시 비운 집에서 지내면서 대소변 받아내고 약만 먹이고 그러고 있어."

당시 할아버지에게 상해를 가한 공무원은 서부경찰서에 고발된 상태다. 그러나 공무원이 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진척이 없다. 게다가 할머니는 병간호를 하느라 고발 건에만 매달릴 수 없어 더 안타까운 상황이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광주시장이 나와서 해명하고 그 공무원은 징계를 받아야 돼. 아니, 시청 앞마당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벌써 일이 벌어진 지 6주도 넘었는데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사람은 다 죽어가는 데 아무도 관심이 없단 말이여. 서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이 무슨 짓인가?"

다시 빗줄기가 거세지면 이들은…

▲ 천막 안에는 한 할머니가 "비가 와서 온 몸이 쑤인다"며 누워있었다. ⓒ안이슬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 '또 비오냐'며 걱정이다. 지난 태풍에 무너져 다시 손을 본 천막은 빗속에서 힘겹게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장마에 비가 거세지면 이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 될 때까지 버텨야지 별 수 있나.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집회도 계속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야지. 그러다보면 반드시 해결책이 나올 거라고 믿네." 씁쓸한 웃음을 짓던 배 회장이 바깥까지 따라 나와 손에 무언가를 꼭 쥐어주었다. "내 입이 심심할 때 먹는 커피과자야. 다른 건 줄 것 없고 이거라도 줌세. 집에 조심히 가소." 배 회장의 뒷모습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가에는 물기가 흘렀다. ▲ 당시 사업에 반대한 주민들의 서명(좌)과 철거민들의 민원에 대한 주택공사의 답신(우). 주택공사의 답신에는 "사업에는 문제와 무리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안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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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뭔 2006-08-07 10:50:42
안이슬 기자님의 기사는 정말 이슬같아요. 맑고 보석처럼 빛나지요.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공무원에 대한 철거민의 증오를 너무 여과없이 담았네요. 정말 그런 공무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봤나요?

저도 잘 모릅니다. 시각이 바르면 기사도 바릅니다. 바른 기사가 시민의 소리를 키웁니다. 무턱대고 쓴 기사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 가슴에 멍을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