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권력과 민중의 숨은 여망
은폐된 권력과 민중의 숨은 여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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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박몽구 시인·문학평론가
장마전선이 봄을 잔인하게 마무리하듯, 개혁과 진보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꺾으며 지방선거가 끝났다. 다양한 계층들 사이에서 갖가지 분석이 잇따르고 있지만, 필자의 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 마을 인근에 퇴임 후 봉사활동을 하며 지낼 집을 물색중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급격한 권력 누수를 예감하는 씁쓸함이 감돌기도 하지만, 모름지기 온 국민의 개혁에 대한 여망을 등에 업고 권좌에 앉은 사람들이라면 아직 국민에 대한 부채가 많이 남아 있을 텐데 하는 만감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근거를 들라면 열 손가락으로 세기에도 모자라겠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민주와 인권 등 추상적인 거대담론만으로는 통합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1968년의 프랑스 5월혁명 이후, 그 정신적 지도자였던 미셀 푸코, 질 들뢰즈 등이 보여준 사상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과 노동자 등 수백만 명이 참여한 투쟁을 발판으로 등장한 권력 엘리트들의 부패에 실망한 미셀 푸코는 제도적인 권력 뒤에 '은폐된 권력'에 주목하게 되었고, 질 들뢰즈는 유럽 통합이나 인권 등 추상적인 문제가 아닌 팔레스타인 문제, 동성애자의 인권 등 미세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들뢰즈는 권력의 본질은 오염된 자본주의를 자양으로 번식되는 욕망으로 보아, 인간과 동물, 무생물을 모두 욕망하는 기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 결과 오늘날 프랑스 철학은 독일의 아성을 넘어 전세계의 지성을 리드하고 있고, 그 어떤 사조보다 현대의 표정과 구조를 잘 읽어내고 있다고 평가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 세력의 사분오열도 따지고 보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이른바 정권의 교체만으로는 더 이상 민중들 사이에 내재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분출된 서민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구, 집권 초기부터 분출된 권력형 비리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는 이를 대표적으로 말해 준다. 또한 서울시장 당선자가 보수적인 당 색깔과는 다른 인사들을 인수위에 포진시킨 것은 이런 아이러니의 완성판이라고 할 만하다.

한껏 목소리를 높인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는 증식의 논리와 분단의 고착화를 기반으로 한 듯 보이는 기득권 수호 정신이다. 그런데 문제는 집권 여당 안에도 그 뿌리를 함께 하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개혁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대안 세력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사태이다. 노무현 정권은 불행하게도 이른바 정권을 창출하는 데 집사의 정신으로 시종한 이들에게만 권력을 개방함으로써 광범위한 개혁 세력의 분열을 자초했다. 그에 편승한 정치 엘리트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게 급속하게 부패하고 기득권층화함으로써 스스로 존립의 기반을 좁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사회의 '은폐된 권력'의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는 한편, 개혁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준 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선임된 여당 대표의 행보는 걱정을 더해 준다. 그는 '서민'이라는 거대담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제 거대담론의 시대는 지나갔다. 들뢰즈가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듯 서민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해 정책을 펼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하다. 모두 잘 살기 위한 정책은 결국 약자의 목을 죄는 고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물결에 극복하여 온 국민을 실업자로 내몰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법제화 등의 추진을 멈추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철밥통이 버티고 있는 대학 등 오염된 헤게모니를 쥔 지식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

오늘날은 온 지구촌에서 거대담론이 퇴장한 시대이다. 서울시장 당선자 주변 인사에 대하여 친북인사로 모는 세력에서 보듯, 숨은 권력은 급속하게 경찰국가로의 퇴행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권력이라는 먹이를 찾아 모인 정당, 눈앞의 이익만을 노리는 집단이 아닌, 넓은 범위의 연대와 대안 모색이 절실하다.

흩어진 민심이 다시 모이는 계기는 철저하게 기득권을 버리는 정신과 함께 무한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현정권에 몸담은 사람들은 퇴임 후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닌 모든 것을 버리고 은폐된 권력을 드러내 새로운 권력상을 새기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기계적 무의식에서 벗어나 희망의 새 주소를 얻게 될 것이다.

/박몽구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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