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것이 그토록 안된단 말인가
왜 그것이 그토록 안된단 말인가
  • 채복희
  • 승인 2006.04.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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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채복희 편집장
19세기 후반 경제학이 정치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된 이후 일반인들은 돈으로 환산되기 힘든 문화예술을 멀리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그 좋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때라 작품이 어떻느니, 디자인이 좋으니 마니 하는 개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게 불과 1백여년 전 그쪽 사람들 인식이었다.

간신히 살아나는 광주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산업혁명 이후 시커멓게 오염됐던 영국의 템즈강이 되살아난 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근래 중국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계림의 이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본 사람들은 30여년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고 소감을 전한다. 하천으로 마냥 흘러들어오는 생활 오폐수, 아무 생각없이 버려지는 쓰레기들, 방치되고 있는 축사 등 환경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우리 모습과 거지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 또는 전혀 다른 인식에 의한 깨우침이란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사진기가 영혼을 빼앗아 간다라든지 기차를 처음 본 조선인들이 기절을 했다든지 이런 사례들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만한 것들이다. 조선왕조 후기 청나라를 인정하기 싫었던 사대부들은 과연 그 야만족이 집이나 제대로 지어 살고 옷이나 갖추어 입고 다니는 민족인지 잔뜩 의심을 품은 나머지 직접 다녀온 이들의 말조차 믿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한다. 눈뜨지 못한 또는 더 이상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수구세력들은 망해버린 명나라와의 신의를 내세우며 청을 적대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외교는 실패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병자호란을 당하고 말았다.

오늘 우리 광주인들은 이런 저런 문명의 충격을 어떻게 겪어 내고 있는가. 도심에 흐르고 있는 광주천은 여름철 목물이 가능한 하천이었다. 그러나 몇십년 동안 도시 하수구 역할을 했고, 이후 하천을 정화시키려는 수년간의 피땀어린 노력에 의해 천은 간신히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심정이다. 서구에서 한차례 겪었던 도심하천 오염문제와 그 각성의 지난한 과정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가 한 마을처럼 된 덕분에 압축 전달되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광주천을 도심 비오톱(생태하천)으로 살려내려면 여태껏 들였던 비용과 노력의 수십배가 더 들어야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천은 성급하게 굴지 말고 가장 근원적인 문제부터 시작하도록 치밀하고 정교한 연구를 거쳐 가보자는게 시민들의 목소리다. 산은 안식년제라는게 있다. 안식년제란 간단하다. 산길을 폐쇄해 사람들의 발길을 일정 기간만 막아버리면 생태계가 절로 살아난다는 말이다. 광주천도 이런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무성한 논의를 뒤로 하고 시간의 테이프를 감아 되돌리는 것이다. 원형을 되찾자는 시도다. 그러나 이는 너무 어려운 주문이다. 저 상류 무등산부터 광주천 물길을 따라 형성된 사람들의 자취를 흔적없이 다 뜯어내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도 한번 그렇게 해보자고 온 시민들이 합의해 준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더기 장식 좀 그만
광주천은 그런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왜 무엇 때문에 가난한 집 보수하듯 누덕누덕 발라지고 있는가. 환경청도 모르게 공사를 했다는 조형물들과 조명등, 각종 장식물들 이렇게 해놓으니까 정녕 좋은가. 120억원을 꿀꺽 삼켜 설치된 이것들이 광주천을 비오톱으로 살려내는데 무슨 기여를 하는가. 이웃 일본만 해도 도심 하천을 어떻게 생태하천으로 가꿔가는지 눈뜨고 보지도 못했단 말인가.

콘크리트 빌딩숲 사이에 그나마 고맙게 흘러가는 저 광주천이 진정 아름다워지는 것은 다름 아니다. 마치 태고적 모습처럼 물풀이 덤불지고 군데군데 습지나 웅덩이가 있고 모래사장이 잠깐씩 드러나기도 하며 물가 식물들이 우거지고 어느 오지의 처녀지처럼 고색창연해지는 그것 아닌가. 가능한 원형의 자연으로 돌아가기 아닌가. 그러니까 제발 광주천에 장식물이라도 더 이상 보태지 말라. 전시물을 왜 그다지도 좋아하는가. 누가 원했단 말인가. 그 장식물이 비오톱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길로 나가게 하며 나중에 한낱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토록 예측하지 못한단 말인가.

1974년 광주를 방문했던 작가 루이제 린저가 "파리의 세느강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 사고로는 그토록 초라한 광주천이 뭐가 아름답단 얘긴가. 대접하느라 한 말이었는가 했다. 그런데 린저가 그때 본 것은 도심에 자연 상태로 방치(?)됐던 비오톱 광주천이었던 것이다.

/채복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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