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누가 진짜 악마일까?
[뮌헨] 누가 진짜 악마일까?
  • 김영주
  • 승인 2006.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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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뮌헨 스필버그 작품에는 온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영화가 있는가하면, 그 나름대로 이 세상을 향하여 화두를 던지는 무거운 주제로 진지하게 다가가는 영화가 있다. 흥미진진한 영화는 [조스] [레이더즈]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공원] [마이너러티 리포트] [우주전쟁]이고, 무겁고 진지한 영화는 [크로즈 인카운터] [칼라퍼플] [태양의 제국] [쉰들러 리스트] [아미슈타드] [터미널] 그리고 이번의 [뮌헨]이다.( [ET] [후크] [라이언일병] [AI]는 그 어느 쪽에 놓기 힘들다. ) 이런 재미와 진지를 주거니 받거니 갈마들면서 세상에 작품을 내 보낸다. 돈을 잔뜩 벌고 나선 그 배부른 여유로 돈벌이가 안 될 셈치고 그 나름의 작품성을 추구하는 영화를 만든다. 돈벌이에만 매달리지도 않고 작품성에만 짓눌리지도 않는 그의 능력이 참 부럽다. 지난 번 [우주전쟁]은 흥미로 만들었는데도 흥행에 실패했다. 난 "스필버그 작품 중에서 가장 못났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바로 앞의 [우주전쟁]에서 우리를 실망시켰더라도, 우리는 [조스] [레이더즈] [ET] [인디아나 ] [쥬라기공원] [마이너러티 ]에서 맛본 엄청난 재미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내걸린 영화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못한다. 그랬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데도 줄서서 기다리며 입장했다. [뮌헨]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를 인질로 테러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 당시 나야 검둥 벌거숭이의 어린 시절 때를 벗지 못하고 동네골목을 누비고 산과 들과 냇가에서 뛰어노느라, 세상사엔 완전 까막눈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축제에서 인질을 잡아 세상을 협박하는 나쁜 놈 새끼들”이라며 마구 흥분하는 말씀이 귓가를 어슴푸레 맴돈다. 나도 그렇게 나쁜 놈들로 알았고, KBS반공드라마에서 ‘검은 9월단과 적군파’가 으스스하게 등장하는 걸 보았다. 그 해 10월과 그 해 5월 그리고 80년대의 뒤틀린 세월을 경험하고,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세상살이가 어떻게 뒤틀리며 비비꼬여 들어가는지를 몸과 맘으로 깨달아 갔다. 막연하게 지식으로만 겉돌던 역사적 사건들이 점점 몸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마침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종교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죄악을 저지르는지를 절감하였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종교와 이념을 드높이 외치며 '지나치게 높은 이상향'을 향하여 극렬하게 '자기 순수성'을 집착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고결한 근본주의자'가 너무 싫어졌다. 우리에게 역사적 위대한 인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고결한 근본주의자'들로 보인다. 그들은 학문과 예술 그리고 사상과 종교로 인류의 스승이라고 찬양받고 있다. 일반사람들이 범접하기 힘든 그들의 '극렬한 순결성'을 본받으라고 세뇌하며 우리들을 꾸짖고 담금질하여 닮아가야 한다고 짓누른다. 온 세상이 오천년 동안 그렇게 세뇌하고 짓누르며, 우리 인류는 이 잔혹한 역사의 발자취를 걸어왔다. 미국 네오콘의 부시정권과 이슬람 근본주의 빈 라덴은 이 잔혹한 역사의 거룩하신 선구자들이 말씀해주신 드높은 이상향을 향하여 내달리는 '가장 극렬한 행동대장들'이다. 그 '고결한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 뮌헨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정부와 검은 9월단의 테러리스트는 바로 그 국가와 민족 그리고 종교와 이념을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이다.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임무완수에 방해가 될 따름이다.” 그리곤 서로 얽혀드는 테러의 악순환이 자꾸 깊어진다. 거기에 ‘인간적 동정과 가족사랑’이라는 방해물이 자꾸 끼어든다.


그 폭력들과 그 심리적 갈등을 세심하게 그려간다. 어린 소녀가 끼어드는 장면이 잔뜩 긴장되고, 미모의 여자 테러리스트를 암살하는 장면은 사뭇 자극적이다. 그런데 테러장면들이 우악스럽게 보이긴 해도, 그 흐름에 긴박감이 약하고 지루하게 늘어진다. 야한 장면은 어설프게 괜히 끼어들어 있다. 그렇쟎아도 주제가 무거운데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늘어지니 별로 재미없는 영화로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를 재미있어하든 재미없어하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암암리에 편파적이다. 겉모습은 검은 9월단의 테러든 이스라엘의 테러든 모든 테러는 나쁘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모습은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에게는 그들 표정과 행동의 분위기에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깊이 담아낸다.( 영화 흐름이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도 이걸 섬세하게 그려내느라 많은 화면과 시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

테러는 그 어느 쪽이든 나쁘지만, 현실적으로 이 민족적 종교적 갈등을 긴 역사 속에서 맺히고 맺힌 숙명이라고 인정한다면, 이스라엘쪽을 편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인공을 이스라엘 테러리스트로 잡고 들어간 것에서부터 이미 굳혀진 결론이겠다. 그 의도와 솜씨가 교활하다.

스필버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교활한 건지, 아니면 어줍잖게 무게를 잡으려다가 본의 아니게 교활해진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스필버그의 관점이 그런 각도를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의 태생적 한계로 보는 쪽이다. 태생적 한계이니 교활한 건 아니다? ) 스필버그의 이런 영화들이 모두 그렇다. 무겁고 진지해 보이지만, 결국은 미국옹호이고 백인중심주의이다.

실은 스필버그만 그러는 게 아니다. 보수쪽에서 '인류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그 거룩하신 말씀을 향한 극렬한 자기 순결성'에 매달려 있다. 이런 모습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고, 자크 데리다는 '극렬한 자기 애착 Le affection’이라며 해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적 논객들은 이들을 '지적 사기'라거나 '악마의 창녀’라며 비난한다.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긴 발자취에는, 이렇게 '천사와 악마’를 놓고 딱 갈라서서 서로 박치기하고 물어뜯으며 흘린 '죄악의 피'로 흥건히 적셔져 있다. 누가 진짜 악마일까?

/김영주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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