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이스라엘정부와 검은 9월단의 테러리스트는 바로 그 국가와 민족 그리고 종교와
이념을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이다.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임무완수에 방해가 될 따름이다.” 그리곤 서로 얽혀드는 테러의 악순환이 자꾸
깊어진다. 거기에 ‘인간적 동정과 가족사랑’이라는 방해물이 자꾸 끼어든다.
그 폭력들과 그 심리적 갈등을 세심하게 그려간다. 어린 소녀가 끼어드는 장면이 잔뜩 긴장되고, 미모의 여자 테러리스트를 암살하는 장면은 사뭇 자극적이다. 그런데 테러장면들이 우악스럽게 보이긴 해도, 그 흐름에 긴박감이 약하고 지루하게 늘어진다. 야한 장면은 어설프게 괜히 끼어들어 있다. 그렇쟎아도 주제가 무거운데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늘어지니 별로 재미없는 영화로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를 재미있어하든 재미없어하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암암리에 편파적이다. 겉모습은 검은 9월단의 테러든 이스라엘의 테러든 모든
테러는 나쁘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모습은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에게는 그들 표정과 행동의 분위기에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깊이 담아낸다.( 영화
흐름이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도 이걸 섬세하게 그려내느라 많은 화면과 시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
테러는 그 어느 쪽이든 나쁘지만, 현실적으로 이 민족적 종교적 갈등을 긴 역사 속에서 맺히고 맺힌 숙명이라고 인정한다면, 이스라엘쪽을
편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인공을 이스라엘 테러리스트로 잡고 들어간 것에서부터 이미 굳혀진 결론이겠다. 그 의도와 솜씨가 교활하다.
스필버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교활한 건지, 아니면 어줍잖게 무게를 잡으려다가 본의 아니게 교활해진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스필버그의 관점이 그런 각도를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의 태생적 한계로 보는 쪽이다. 태생적 한계이니 교활한 건 아니다? ) 스필버그의 이런 영화들이 모두 그렇다. 무겁고 진지해 보이지만, 결국은 미국옹호이고 백인중심주의이다.
실은 스필버그만 그러는 게 아니다. 보수쪽에서 '인류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그 거룩하신 말씀을 향한 극렬한 자기 순결성'에 매달려 있다. 이런 모습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고, 자크 데리다는 '극렬한 자기 애착 Le affection’이라며 해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적 논객들은 이들을 '지적 사기'라거나
'악마의 창녀’라며 비난한다.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긴 발자취에는, 이렇게 '천사와 악마’를 놓고 딱 갈라서서 서로 박치기하고 물어뜯으며 흘린
'죄악의 피'로 흥건히 적셔져 있다. 누가 진짜 악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