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검], 서극 감독 베레부렀다!
[칠검], 서극 감독 베레부렀다!
  • 김영주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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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칠검 오늘 신문을 잠깐 뒤적이는데, 대중문화섹션에서 ‘짜장면 100년’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래, 짜장면!” 그 짧은 순간을 비집고, 조각조각 흩어진 짜장면에 얽힌 나의 단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벅스뮤직에서, 추억의 7080노래를 틀어놓고, 신문을 읽어갔다. 남인수의 ‘청춘야곡’이 들려온다. 궁합이 딱 들어맞는다. 잠시 타임머신을 거꾸로 타고, 60년대 남도극장에서 구시청 가는 길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중국집으로 들어섰다. 글 옆에 펼쳐놓은 사진도 큼직하다. 중국집 아저씨가 면가락을 휘휘 잡아 늘리고 돌리고 탕탕 쳐대며 시끌벅적한 중국말 “쏼라 쏼라 ···”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그 땐 그랬다. 짜장면 볶음밥 짬뽕 우동 ··· ” 그 거리풍경 · 그 풍물들 · 그 냄새 · 그 맛, 그리고 그 시절 그 이야기들. 그 때 그 시절은 좋든 싫든 정겹다. 그래서 그립다. 요즘 글쟁이나 말쟁이들이 쓰고 말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들에, 양념이 지나쳐서 오히려 실감나는 맛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이 글은 참 실감났다. 시인 안도현도 한 마디 거들었다. 좀 호들갑스러웠지만, 그 정겨움이 그리워서 오바한 걸로 이해하고 흐뭇하게 읽었다. 중국 무협영화에도 그런 정겨운 그리움이 깊이 숨어있다. 열 살 시절엔 단연 [외팔이]의 왕우와 [정무문]의 이소룡이다. 이소룡은 지금도 나에겐 그 어떤 무술도 범접하지 못하는 신화이다. 스무 살 시절엔 단연 성룡과 이연걸이다. [옹박] 선전물에서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지쳤다! 이연걸은 약하다!”고 했다. 표현의 압축이 대단하다. 이렇게 짧은 글에 이렇듯이 정곡을 찌를 수 있을까? 옹박이 제 아무리 무술을 잘해도, 이소룡의 민첩하고 다부지고 장쾌함 그리고 괴이한 마력과 멋진 매력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그런 이소룡은 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와 견주는 걸 피해 보겠다는 뜻이렸다. 성룡은 이소룡보다야 못하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과 아기자기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그런데 [홍번구] 뒤로는 김이 빠지고 유치하고 무성의하다. 나이 들어가서일까? 영화 밖의 세상사에 시달린 걸까? 그래 그는 지쳤다. 이연걸은 중국 계림의 신묘한 풍광에 빠져버린 [소림사 1 2 3]에서 앳된 소년으로 놀라운 무술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소룡에 비하면 묘기대행진 같은 느낌이다. 카메라 조작이나 화면 조작이라는 양념이 무술맛의 깊이를 떨어뜨린다. 좋지만 싱겁다. 그래서 약하다. ▲ ⓒ칠검
어디 이소룡 성룡 이연걸뿐이겠나? 홍금보의 [귀타귀] ` 양자경의 [예스마담] ` 왕조현의 [천녀유혼] ` 임청하의 [동방불패]를 빼 놓을 수 없다. 암울한 80년대에 영화관을 누비며 빨려든 환상적인 무술은, 60년대 중국집의 주렴을 짜그라락 젖히고 동그맣게 또아리를 튼 쫄깃쫄깃 손면빨에 거무죽죽 짜장국물 ` 포근보근 감자깍두기 ` 미끈꼬소 돼지비계가 질퍽질퍽 어우러져 만나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했다. 그 한 가운데에 항상 서극과 정소동 감독이 있었다. 그 서극 감독이 [칠검]을 메고 나타났다. 그 시절 짜장면의 추억보다 더 진한 그리움이 솟구쳤다. 두어 해전에 [촉산전]을 놓쳐버린 안타까움까지 더 해지는 듯 했다. 예고편도 거창했다. 너무 거창해서 좀 불길했지만, “서극 감독이 원래 삼류니까, 멋진 액션만 즐기면 되는 거지~ 뭐얼! 짜장면 먹음서 똥폼 잡을라는 게 더 우스운 거지~”.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라, 부랴부랴 달려갔다. 근데 실망했다. 아주 실망했다.

중국 액션영화는 굳이 따지자면, [외팔이]같은 무협영화와 [정무문]같은 무술영화와 [영웅본색]같은 깽영화로 나눌 수 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상당히 다른 맛이 있다. 서극 감독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다루었지만, [촉산] [소오강호] [황비홍 씨리즈]같은 무협영화에서 주로 인기를 끌었다. 무협영화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는 [촉산]으로 운기조식運氣操息하며,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 씨리즈] [동방불패]와 함께 내공을 모아서 거센 장풍掌風을 일으켰다. 그렇게 우리의 80년대 극장가를 휩쓸었다. 그는 시나리오가 좀 유치해 보일 정도로 엉성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대충 헐거웠지만, 소품이나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써서 중국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제법 실감났고 액션장면이 아주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의 장점이 많이 돋보이기에, 유치한 시나리오나 헐거운 짜임새는, 오히려 삼류가 보여주는 어설픈 투박함으로 이해했다. 그런 점에선 장예모 감독의 [영웅]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대로 그 만큼 만족스러운데, 꼬질꼬질하게 씹어대는 건 오히려 잘못이라고 여겼다.

   
▲ 한국 여배우 김소연이 출연해 주목을 모았던 [칠검] 이미지. ⓒ칠검
그러나 이번에는 그나마 만족스런 액션마저도 어영부영한 눈속임으로 가득하고, 중국의 고풍스런 분위기마저도 국적불명의 게임 캐릭터나 배경화면처럼 뜨악스레 과장하여 종잡을 수 없는 이질감으로 어색했다. 악당들은 어수선하게 시정잡배 같았고, 엄청난 칠검을 둘러맨 주인공들도 산만하고 어지러웠다. 스토리에도 가닥이 잡히질 않고 액션에도 초점이 잡히질 않았다. 마치 우리 영화 [단적비연수]처럼 어처구니없이 유치했고, [형사]처럼 폼생폼사로 넘쳤다. 중국무협이라는 저고리에 국적불명의 게임모드라는 바지를 입고 똥폼에 살고 똥폼에 죽은 것이다. 인터넷으로 서극과 정소동을 비롯해서 중국액션영화 감독들의 행적을 살폈더니, 헐리우드와 손잡고 잡탕스런 영화구렁에서 많이 놀았다. 거기 놀다가 베레분 것 같다. 쓸만한 놈이 유학 가서 서양물 잘못 먹고 베레불 듯이. 이명세 감독도 할리우드에서 놀다왔다는데, [형사]도 그렇게 베레분 게 아닐까?

동양과 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를 함께 아울러서 이런저런 모색을 해 본다는 건, 21세기에 이루어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 베레불기 십상이다. 너무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했지만, 이번에 [칠검]을 보고 더욱 실감했다. 예술 쪽만이 아니라 학문 쪽에도 이런 사람 많다. 대가大家란 듯이 똥폼 잡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저고리에 바지가 따로 논다. 나도 그렇게 베레불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요 두어 해 사이, 내 글공부에 초조감이 들어 좀 서둘렀다. 서둘지 말자. 호시虎視하되 우보牛步하라! 다시 새기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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