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댁의 가을걷이
군산댁의 가을걷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9.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우리 농촌은]이태옥(전남 영광 농민)
시아버님이 갑자기 한여름의 끝자락에 돌아가신지 어제 같은데 얼마 후면 49재를 맞이한다. 15일여의 짧은 입원 끝에 돌아가신 터라 아직도 안타까움과 잔영이 남아있지만 어머니 군산댁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고추수확이 한창이던 7월말에 입원하신 아버님을 돌봐야 하는 병원수발에다, 논과 밭작물 살피기에도 허덕이던 군산댁은 ‘생’과 ‘사’의 고뇌보다 살아있는 생명들을 어찌 거둘지에 몰똘해 있었고 그 걱정이 컸었다.

삼일장을 치루고 다음날 딸, 아들, 사위, 손자, 며느리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고추밭으로 달려가 붉디 붉은 고추를 따내며 군산댁은 병원에서도 고추 딸 일 걱정에 더 늙어 버렸다던 아버님을 입에 올리셨다.

논농사 13마지기, 터널고추 4마지기, 콩이며 깨가 1마지기...
군산양반 살아계실 적엔 문제도 안 되던 일거리에 가위눌린다는 군산댁은 숟가락 빼내기 바쁘게 밭으로 달려 나간다.

휴가철과 장례식 끝나고 자식들 힘빌어 고추는 땄지만 ‘후두둑’ 떨어지도록 익어버린 깨 거둘 걱정은 군산사시는 작은 외삼촌 내외가 달려와 덜어준다. 농사일 한번 안 해봄직한 작은 외삼촌은 어찌나 깨를 애기 다루듯 베어내든지 덕분에 허실이 많이 줄었단다.

또다시 붉게 익어가는 고추 딸일이 걱정이던 차에 미정이 엄마, 아랫뜰 아줌마, 죽림댁, 변산댁이 팔 걷고 나서니 반나절 일감 밖에 안된다.

날 밝기 바쁘게 말려낸 고추 손질하여 택배 불러놓고 완도 삼촌네며, 서울 사돈네, 군산 시숙네로 연방 보내며 하루해가 까매지도록 일손 놓지 않는다.

동네아짐들 발품으로 고추일감이 얼추 끝나가니 툭툭 터져 떨어지는 진주리콩(메주콩) 매야 한다며 울상이시다.

마침 뒤늦은 휴가차 내려와 있는 막내딸과 친구, 그리고 나까지 힘을 합쳐 고추밭과 깨밭을 지나 끄트머리에 누렇게 익어버린 콩밭을 맨다. 생전 처음해 보는 리어카질(운전)에 손발이 떨리고 자동차 운전보다 힘들다며 엄살도 피워본다.

고추 나간 하우스 자리에 콩 갖다 말리니 이틀 후 군산댁의 콩 터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찌 알고 놉(일꾼)들은 일감 맞춰 오는지 이번추석엔 올망졸망한 손자들까지 마늘 종자 까고, 시동생 내외는 집 뒤의 텃밭 갈아 마늘 놓았다.

“이제 마늘도 많이 못한께 한구멍도 빼먹지 말고 놓아야 혀”라며, 다 놓은 마늘 구멍을 확인까지 하시는 군산댁의 손길에 가을의 허전함이 배여 있다.

아이들 몰아 고구마 캐기로 추석일을 마감하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군산댁의 가을걷이는 큰일을 앞두고 있다. 나락베어 말리고, 쟁이는 일,,, 그땐 또 어떤 놉(일꾼)들이 찾아들어 힘을 보탤까?

군산댁은 혼자맞는 가을걷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시골마을의 공동체를 맞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