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1년 되찾아야지요”
“빼앗긴 1년 되찾아야지요”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5.09.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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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교조 출신 첫 교장, 김선호 신가중 교장

[시민의 소리] 필화 사건, "안타깝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의 후손인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우리는 지난 날, 피를 토하며 싸웠다. 오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이 시점, 피 대신 촛불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그대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갖는다.
- 2004년 4월 본지 기고문 中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간부 출신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중등학교 교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김선호(58) 교장의 승진이 보류된 것은 지난해 4월 예기치 않은 필화 사건이 발단이었다.탄핵 정국이 나라를 혼란 속으로 몰고갈 때 본지 [시민의 소리}에 기고한 '정권 찬탈세력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글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돼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기에 이른 것. ‘우리의 후손인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그 글은 탄핵에 앞장섰던 세력에 대해 젊은이들의 올바른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는데, 중앙지와 방송에 ‘중학교 교감이 탄핵 주도 세력에 대한 심판을 공개적으로 촉구해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타전되더니 급기야 ‘마녀 사냥’과 같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일로 인해 김 교장은 그 해 교장 승진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셔야 했고, 1년만인 지난 9월 1일에 광산구 신가중학교에 신임교장으로 부임을 했다. 지난 1년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 교장은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난 1년 동안 교육자적 사명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은 재임기간 동안 하루 2시간씩 더 일하면 지난 1년 세월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허허웃음을 지었다. 김 교장에게 이번 승진은 결코 개인적인 경사만은 아니다. 전교조 출신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육위원회 의장, 부의장을 배출한데 이어 전교조 간부출신으로 교장으로 승진한 것 역시 광주에서는 처음 있는 일.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에게 이번 김 교장의 승진은 '긍지와 희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인지 김 교장의 집무실 안팎으로 꽃집을 차려도 좋을 만큼의 엄청난 축하 분(盆)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 교장은 “화분의 절반은 평교사들이 보낸 것”이라고 좋아하면서도 “어디에 치우기도 마땅찮고 영 쑥쓰러워서 어디...”하며 어색해했다. 김 교장은 "7~8년전만 해도 승진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전교조 출신 교사들도 승진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됐다"며 격세지감의 감회를 밝혔다.교감, 교장 같은 관리자가 되면 자동적으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전교조의 규칙상, 정식 조합원은 아닐지라도 김 교장은 여전히 전교조의 열렬한 지지자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김 교장은 전교조의 살아 있는 '역사'며 '영광'이며 늘 푸른 소나무 와 같은 존재로 평가받는다. 이 날도 김 교장은 전교조에 대해 따뜻한 충고로 그 애정을 대신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할 때 바둑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텁게 포석을 깔고 순리에 맞춰 돌을 두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국민과 교직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사업의 순서와 완급을 잘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세간에 전교조가 이익단체로 변했다는 둥 교직원의 권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김 교장은 전교조의 모든 방향은 본질적으로 옳다는데 동의했다. 김 교장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교육인적자원부 내의 실무 관료들도 교육현장 경험이 있는 분들이 좀 들어가서 정책을 고민하고 생산했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덤으로 얻은 나머지 임기, 아이들 위해 바칠 것"
김 교장은 부임하는 학교마다 어김없이 화젯거리를 뿌리고 다녔다.

일부에서는 '기행'이라는 평가가 어김없이 따라붙었지만 학생들이 볼 때는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 철학'일 뿐이었다. 학교의 예산을 만원 단위 하나까지 전부 공개를 하고, 교복구매나 앨범, 수학여행, 급식업체까지 공개입찰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는가 하면, 돈 걷어 학교 비품 사 나르는 것이 주 임무이던 기존 학부모회를 자녀 교육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기구로 탈바꿈시킨 것도 옹고집 같은 그의 교육 철학에서 기인한다.

이 뿐 아니라 교사들의 결재 장부를 간소화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두발 규제, 방과 후 수업과 같은 교육 현안은 자율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하게 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장해주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자가 해야 할 소명이라고 믿는다.

김 교장이 월곡중학교에 교감으로 재직 할 때,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 효순 두 여중생 사건에 대해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이 촛불 시위에 참가하고 소파(SOFA) 개정 운동에 나섰던 일화는 교육계에서는 유명한 얘기다.

지난 1일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그는 더 큰 욕심을 꿈꾼다. 늦은 부임인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조바심을 친다. 김 교장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학교'를 약속하는 대신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몇 가지 체험학습을 계획 중이다.

학교 뒤뜰에서 야영하기, 친구 집에 가서 하룻밤 자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사교성과 이해심이 부족한 요즘아이들에게 친구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알게 해줄 것이다. 4.19 추모 행사나 5.18 기념 걷기 대회, 6.25 기아체험 같은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에게 나라와 전(前)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 정년까지는 4년 반. 그는 이른바 '탄핵 필화 사건'이후 나머지 삶을 '덤'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 교장은 "덤으로 얻은 나머지 기간 동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저 눈치 보는 일 없이 소신대로 할 것"이라며 담담한 다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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