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마음은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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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석의 교육희망

 달마대사가 숭산의 한 토굴에서 9년 째 면벽 수행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폭설이 쏟아지는 겨울에 한 사내가 달마대사의 토굴로 찾아왔습니다.

 “저에게 바른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달마대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면벽 수행하고 있던 자세 그대로 냉담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그대에게 법을 말한다 한들 그대는 나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달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굴은 짤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피비린내로 가득 찼습니다. 달마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한 사내가 서 있는데 그의 팔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발밑에는 핏덩어리가 된 한 쪽 팔이 눈밭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스님”
 달마대사는 여전히 냉담한 어투로 그 사내를 떠보듯이 대꾸했습니다.

 “그렇다면 불안하고 고통스런 그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내가 평안하게 해 주마.”
 달마대사의 말에 사내는 당황하며 말조차 더듬거렸습니다.
 
“마음을 찾으려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되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평안하게 하였느니라.”
 달마대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그 사내는 대사의 가르침을 깨닫고 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달마대사는 그 사내를 제자로 삼고 그의 법명을 혜가慧可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9년 동안 면벽 수련을 하고, 자신의 한 팔을 잘라 도道를 구하는 옛 선승들의 마음의 경지는 현대를 사는 우리 같은 범인들이 좇아가기엔 너무나 멀고 높아 다만 감탄할 뿐입니다.

게다가 달마대사가 어떻게 그 사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는지, 그 사내는 그 때 무엇을 깨달았는지, ‘말’과 ‘상식’으로 움직이는 우리네 마음으론 온전히 깨치기 어렵고 다만 짐작할 뿐입니다. 대단한 마음의 경지에 이른 옛 선승들에게조차 이처럼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고 평온히 다스리기 힘든 것이었나 봅니다.
 사람의 마음의 흐름을 주로 표현하는 서정시에서 ‘一切唯心造’라는 깨달음은 시의 좋은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고향(故鄕)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님의 ‘고향’이라는 시입니다.
 ‘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절에 우’는 고향에 시인은 왔습니다. ‘뫼끝에 홀로 올’라 풀피리를 불어 봐도 ‘어린 시절의 풀피리 소리는 아니나고/메마른 입술에 쓰’기만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시인의 마음이 이미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처럼 시인의 마음이 마음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마음이란 놈은 이처럼 옛 고승들이나 시인에게도 종잡을 수 없고 그 본성을 깨치기 힘든 화두였나 봅니다. 그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같을 겁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건 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장기석 인텔사고력교육센터 원장 intelma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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