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 '막장인생'의 검은 그늘
진폐증, '막장인생'의 검은 그늘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5.08.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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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할 수 없는, 날짜없는 사형선고

화순고려병원 6층의 환자들. 건강한 듯 보이는 데도 모두 장기 입원해 병상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진폐증 환자들이다. 겉으로는 멀쩡한 듯 하나 속은 온통 ‘상처투성이’인 것이 진폐증의 특징. 이들 환자의 대부분은 화순광업소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전남지역 공식요양의료기관 4군데중 순천을 제외한 3곳이 모두 화순지역 병원인 까닭도 화순탄광과 관련이 있다.

   
▲ 32년 동안 탄광노동자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조영종(66)씨. 조씨는 "한 때 산업전사로 추앙받으면서 유공자 소리까지 들었는데 지금은 버려진 신제"라며 울먹거렸다.  ⓒ모철홍
치료불가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업무상 질병. 진폐증에 따라 붙는 두 가지 설명 말이다. 현미경으로나 관찰되는 미세먼지들이 폐를 거쳐 혈관을 타고 몸의 각 기관으로 퍼져 있다보니 근본적으로 제거가 어렵고, 몸 전체에 걸쳐 합병증을 만들어 내 치료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래서 진폐증 환자들은 ‘치료’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다.

진폐증 환자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약 3만5천명 정도. 이중 15%에 해당하는 5천명 정도가 사망했다. 하지만 진폐증 진단을 받지 못한 잠재환자들이 다수여서 “향후 진폐증 환자의 규모와 진폐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들의 추이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 서울대 백동현 교수의 지적이다.

이처럼 다수의 진폐증 환자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급속한 산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탄광이 가장 많은 진폐증 환자를 만들어 내고, 시멘트 공장, 연탄공장, 도자기그롯 공장 등에서도 진폐증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광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진폐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보급되는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해야만 1차방진이 가능한데 그 마스크를 쓰고는 30분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결국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은 채 일하게 되고 먼지는 걸러지지 않고 호흡기를 파고드는 것이다.

화순탄광에서 일하다 진폐증에 걸려 요양받고 있는 김용선(73)씨는 “5년 일하면 무조건 병에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는 날짜없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라며 “감기만 잘못 걸려도 죽는다”고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진폐증 환자들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자신들을 퇴원시키려는 관계당국, 그리고 겉만 이상 없다고 해서 ‘나이롱환자’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얼마 전, 실제로 모 언론사는 진폐증 환자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게재한 적도 있었다.

32년 동안 화순광업소에서 일하다 정년퇴임한 조영종(66)씨는 “한 때는 산업전사로 추앙받으면서 유공자 소리까지 들었는데 지금은 버려진 신세”라며 울먹거렸다. 조씨는 “채탄작업을 하고 나면 속이 뜨끈뜨끈해지고, 기침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토하기까지 했는데 그 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발파 후 갱 안에 먼지가 자욱해지면 땀에 절은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는 조씨. 산업용 마스크는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보급되기 시작했다.

살아온 날도 막장이었고, 살아갈 날 또한 막장인 그들. 그들의 기침과 한숨, 그리고 눈물은 한국경제 고속성장의 어두운 얼굴에 다름 아닌 셈이다. 지금의 넘치는 부가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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