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윤상원 열사는 영웅인가?
[특별기고]윤상원 열사는 영웅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월운동 전체를 관통하는 전형적인 투사의 모습

며칠 전 상원이 아버님께서 찾아오셨다.(‘윤상원열사’는 공식적이고 역사적인 명칭이지만, 사적인 입장에서 그는 나의 친구이자 동생이다. 나는 사적인 표현을 좋아하여 종종 ‘상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곤 한다.) “그 동안 무고하셨는가? 혹시 자네한테도 ‘말’지 기자가 찾아오지 않으셨던가 몰라?” 오월이 다가오면 언론사나 방송사들이 연례행사처럼 취재를 하는데, 나도 그 취재대상 중 한명인 셈이다. 나에게도 그 기자가 다녀갔으니까. 왜 그럴까? 25년이나 지났으니 보다 심층적인 취재를 할만도 한데, 아직도 몇몇 중요한 인물들 중심으로 취재를 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으니 참 문제로군,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상원이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데. 아버지 입장에서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던데.” ▲ 윤상원 열사 생전의 모습
말끝을 흐리신다. 아마 속이 몹시 상하신 모양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작년에 화재로 소실된 생가복원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있어서 그 점도 아버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윤상원의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불이 나도 생가복원을 위해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오월에 죽어간 사람도 많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후유증으로 고통받거나 죽어가고 있는데, 왜 특정인 몇 사람만이 마치 오월을 대표하는 듯이 추앙을 받고 주목을 받느냐는 것이다.

“가방끈이 짧은 놈들이 죽으면 조문객이 10명도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누구는 죽으니까 사회장을 해주네!”

최근에 존경받던 스승 한분의 죽음에 누군가가 내뱉는 소리이다. 사회장을 해주는 것이 불만이 아니라, 같은 오월관련자이지만 ‘못나고 못 배운’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지나친 듯하여 화가 나서 내뱉는 소리들이다. 이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80년 오월의 현장에 이 사회의 하층민들이 매우 많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학생이었거나 지식인이었던 사람들이 받는 대접(?)에 비해 ‘못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여전히 찬밥신세로서 그 누가 관심을 가져주느냐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 집에 불이 나도 도와줄래?’ 그 사람들의 심정이 참으로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윤상원에게도 관심을 갖지 말자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오월관련자들 모두에게 차별없이 관심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분간 아무에게도 관심을 갖지 말자고 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는 사람의 문제를 우선하되, 이 관심과 애정이 오월전체에게 확대되는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닌가? 게다가 이러한 일은 오히려 국가보훈처가 주도적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잘못된 일로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말이다.

“그래 그 기자에게 뭐라고 하셨는가요?”

묵묵부답이시다. 그러시겠지. 내 자식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남들이 당신의 자식을 지나치게 영웅시한다고 비판한다는데, 당시에 돌아가신 그 많은 영령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무 말씀도 못하셨겠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윤상원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으며, ‘누갗 그것을 비판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스러웠다. 설마 없는 말을 ‘말’지 기자가 지어내지는 않았을 터이니, 그렇다면 누가 윤상원을 영웅으로 만들고 있으며, 또 누가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는 말일까? 아마 이 말은 ‘못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설움에 겨워 내뱉는 하소연은 아닌 것 같고, 혹시 나처럼 매번 되풀이되는 ‘오월 스토리’의 천박함을 질타하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왜 보다 심층적인 곳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인물 중심으로 오월을 이야기하느냐, 이러한 질타 말이다. 만일 그런 뜻으로 그 말이 나왔다면 전적으로 동감을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 않았다.

“이양현씨는 27일 새벽에 결국 항복을 했다던데,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기자는 이런 요지의 질문을 하면서 집요하게 아버님의 답을 요구하더란다.

“그래서요.” 의아스런 표정으로 내가 다시 묻자,

“아니, 그것이 왜 항복이여! 싸우다 어쩔 수 없어서 손들고 나온 것이제 그것이 항복이 여? 그것은 항복이 아니고 포로가 된 것이여! 그것도 모른당가?” 화가 나신 아버님께서 바로 쏘아붙이신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님은 여전히 화나고 섭섭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표정이다.

세상에는, 자기는 별 볼일 없으나 남을 통해 자신을 빛내려는 속물들이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특정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에 기승을 부린다. 혹시 ‘윤상원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비판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윤상원을 통해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놈들을 비판해야지, 왜 윤상원을 영웅대접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가. 윤상원은 영웅이 아니니까? 영웅도 아닌데 억지로 영웅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윤상원이 영웅인지 그렇지 않은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윤상원이 단순한 ‘오월관련자 한 사람’으로 이야기될 수 없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월항쟁 시작부터 전체적인 상황을 탁월하게 읽어내고 있고, 들불야학 동지들과 투사회보를 만들어 상황 자체를 투쟁적으로 개척해나갔으며, 투쟁파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항복으로 끝날 뻔한 역사적 해프닝을 민중항쟁으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대변인이 되어 진정한 오월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등 오월운동의 전체를 관통하는 전형적 투사의 모습이 역력하다. 어떤 학자는 윤상원의 이러한 활동을 포괄적으로 ‘상황인자’라고 표현했다는데, 과연 그는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역사적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해낸 사람임에 틀림없다.

해마다 오월이면 여기저기에서 윤상원을 이야기하고, 그의 무덤을 찾고, 그의 생가를 방문한다. 오월이 윤상원을 비롯한 몇사람의 오월일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윤상원을 찾는 것은 그를 통하여 오월을 보는 것이 참된 오월을 보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관순을 보는 것은 개인 유관순을 보는 것을 넘어 유관순을 통해 삼일운동을 보기 위해서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래도 유관순을 통해서 삼일운동을 보는 것이 삼일만세운동을 보는 첩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죽어간 우리의 선열들을 모두 존경하나, 유관순은 우리의 선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나, 그를 통하면 우리는 삼일만세운동을 보다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유관순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유관순의 영웅적 행위를 통하여 삼일만세운동을 보기 위함이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세상에 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있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기념’하고자 한다. 이효석의 생가를 복원하거나 영랑과 용아의 생가를 방문한다. 시를 쓰고 소설을 썼던 모든 사람들을 기념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가 순국선열 모두를 기리는 것은 그 역사적 행위에 대한 고마움을 전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이고, 몇몇 사람들을 기념하는 것은 역사적 ‘전형’을 통하여 역사적 ‘의미’를 각인하기 위함이다. 윤상원에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역사적 순간에 상원이를 빛나는 결단으로 이끌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하고 골똘히 생각해보곤 한다. 아니,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그 많은 광주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결연한 결단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결국 나는 항상 탄식을 하고 마는데 나의 탄식은 항상 이런 모양새가 되고 만다.

‘그래, 광주 사람들은 그 때 모두 영웅이었나 봐! 상원이 너도 아마 영웅이었을 거야. 영웅 중의 영웅!’

그러나 상원이 너는 이 말이 참으로 싫지? 그렇지?

 /김상윤(지역문화교류재단 운영위원장)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