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
‘다르다’와 ‘틀리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대한민국]기은조 자유기고가

   
‘다르다’와 '틀리다'. 아무 생각없이 뒤죽박죽 써오던 두 말이었다. 두 단어의 구분없는 쓰임이, 우리사회의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지 않는 대목’임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나, 오래된 습관 때문일까. 아직도 나는 다른 것에 대해, 곧잘 '틀리다'라고 규정해버리곤 한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그렇다. TV에 나오는 트랜스젠더를 조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고, 커밍아웃한 게이 탤런트의 눈물 앞에 불편한 마음이 먼저 앞선다. 모니터로 봤을 때만도 이 정도인데, 내 눈앞에서 그들을 대하게 되면 오죽할까 싶다.

성소수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매체' 역시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매체 속에서는 게이의 여성성이 희화되거나, 성적인 것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그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생뚱맞게 '튀고', 불편하게 어우러진다. 보통 사람들과'틀린(?)' 모습만이 더욱 크게 확인될 뿐이다.

그런 내게 요즘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먼저, 모 컬트시트콤. 마냥 낄낄대고 웃었던 장면에 알고보니 성소수자의 상징적 요소들이 참으로 많이 깔려있었단다. 마초근성을 은근히 조롱하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느 누구나 자기에게 관심가져주기를 바라는 그 캐릭터가, 아는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게이라 한다. 게이캐릭터를 프로그램에 등장시킨 작가는, "나에게 게이 캐릭터는 그저 회사원, 가수 캐릭터처럼 자연스러운 인물 중 하나"라는 철학을 밝혔다. 게이가 자연스럽다고? 묻힌 듯, 드러내는 게이를 통해, 게이를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 작가를 통해, 나는 게이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고, 스스로도 참 따뜻한 캐릭터. 신선한 접근, 예전과 같이 삐뚤어지지 않은 시선에, ‘다름’이 ‘틀림’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모 주말단막극. 2년동안 행방을 감춘 아들이 트랜스젠더로 가족 앞에 나타났다. 집이 발칵 뒤집힐 줄 알았더니, 웬걸. 어머니는 그에게 "얼마나 힘들었니"라며 이해해주고 서슴없이 '내 딸'이라 부른다.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나가는 가족들에게서는 기쁨이 솟아난다. 아, 이렇게 쿨할 수가. 그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특화시키지 않는다. “걔도 사람이야”라며 다른 차이를 인정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그녀, 그의 가족이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예정된 코스다. 

 ‘그곳엔 네가 찾는 행복이 있을 거야’. 성소수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그를 중심적으로 다루던 그 회, 그 시트콤의 주제였다.  ‘다르다’가 ‘틀리다’인 우리 사회에서 그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특정한, 혹은 없을지도 모를 ‘그 곳’이 아닌,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에 있어야 할 행복은, 이미 공중파의 새로운 방송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세상을 바라보고 품는 품도 넓어지는 ‘기쁨’이 있다는 깨달음, 우리의 공중의 주파수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트콤이 방영되는 날을 고대하고, 모 드라마에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는 것이 신이 나는 건 그래서이다. 내가 찾는, 우리가 찾는 행복을 발견해서이다.

/기은조 자유기고가 1believ@naver.com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