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정래가 쓴 두 장의 유언장
작가 조정래가 쓴 두 장의 유언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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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광장-김휘 프로듀서]
   
얼마 전 11년을 끌던 소설 태백산맥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사건이 검찰에 의해 ‘무혐의’처리되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정권유지를 위한 악법이 11년간 짓밟고 있던 것은 한 작가의 창작 자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백산맥의 국가보안법 무혐의 처리를 기점으로 신설 프로그램인 금요기획에 특별대담 조정래 3부작(5월 13일,20일,27일 방송예정)을 기획하고 분당에 있는 조정래선생의 자택으로 촬영을 갔다.

[태백산맥 다시 읽기]라는 평론집의 저자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교수를 대담자로 정하고, 장장 3시간에 달하는 조정래선생의 대하인생을 담아냈다.
무혐의 판결에 대한 소감을 묻자 작가 조정래는 “목을 칭칭 감고있던 쇠사슬이 풀려나간 것 같다”며 홀가분해했다.

그동안 조정래씨는 검찰이나 경찰에만 불려다닌 것이 아니었다. 열두시 한시가 넘는 한밤중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너의 아내, 너의 자식들을 죽이겠다. 너 하나쯤 없애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이 빨갱이 새끼야” 협박을 일삼는가 하면 94년에는 이승만의 양아들에 의해 정식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영화상영을 반대하고 협박하고, 건강한 역사논의 자체를 방해하며 용공으로 매도하는 세력은 몇몇 극우반공단체만이 아니었다. [월간 조선], [한국논단]과 같은 매체들은 특집 형식을 동원해서 조정래가 빨갱이를 미화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했다는 증거 내세우기에 앞장섰다.

창작물을 조각조각 내어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빨간줄을 쳐가며 검열하는가 하면 친일파 보수우익들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에 대한 비판조차도, 사회주의자들의 항일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마저도 ‘용공좌경’으로 몰아갔다. 소설가보다 더 창의적인 발상으로 취재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고, 작가죽이기에 동참했던 것이다.  

목숨에 대한 위협이 도를 넘는 상황에서 작가는 ‘두장의 유서’를 써두었다고 한다. 촬영을 위해 처음 공개한다며 조정래선생은 두장의 유서를 꺼내왔다. 손으로 손수 눌러쓴 육필원고였다. 협박전화에 시달리는 고통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를 기록했고, 만약 내가 죽거든 나의 죽음은 나를 죽여서 이익을 보려는 세력들에 의한 것임을 밝혀두는 대목도 있었다.  

고이 간직했던 유서를 보여주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이 작가에게 유서를 쓰게 하는갗 가슴이 메어왔다.

분단은 씻을 수 없는 민족의 상처지만, 분단에 대한 논의가 왜곡된다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해방공간에서 분단, 군부독재의 아픈 역사를 털고 일어설 힘을 역사를 바로 보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균형잡힌 눈으로 역사를 보는 일을 소설이라는 대중적 수단을 통해 끌어낸 작가 조정래. 그가 당해온 고통이 두장의 유서에 베어있었다. 아직도 우리시대는 역사에 대한 논의를 정상적으로 해보려 할 때, 유서를 써두고 시작해야하는 사회로구나, 싶어 맘이 무거웠다.

그 어려움을 이기고,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에 이르는 한국현대사 100년을 아우르는 대작을 펴낸 작가 조정래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 봄에서야 국가보안법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 무혐의 판결에 불복하며 다시 항소를 통해 법적투쟁을 하겠다는 우익단체의 반발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유서를 보여주며 목에 칭칭 감겨있던 쇠사슬을 벗은 듯 홀가분하다던 작가의 기쁜 얼굴이 어찌되었을까 궁금하다.  

/김휘 광주문화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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