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폭력, 무엇이 문제인가
  • 노영필
  • 승인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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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사)광주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금구중학교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문 앞은 걸게 글로 홍수를 이룬다. 그 가운데 "학교폭력자진 신고 및 피해전화 접수"가 눈에 띈다. 최근 들어 학교폭력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폭력 앞에 학교는 비상사태다. 그 동안 학교폭력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교사들은 또 다른 긴장을 해야 한다.

언제부터 폭력을 일으킨 아이들이 사회적 적이었던가. 학교폭력의 해결을 위해 경찰력까지 동원할 정도로 학교는 무기력해졌다는 말인가. 아이들의 폭력 앞에 교육적 노력은 경찰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말인가.

물론 학교 폭력의 심각성은 크다. 지난해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하루 5명 꼴 징계"(3월16일자)라는 한겨레신문 기사가 그것을 자명하게 말해 준다.

그렇다고 CCTV를 설치하고 학교 안에 경찰력을 끌어들이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은 발전가능성의 존재이다. 학교에서 일등이 평생 일등은 아니지 않는가. 어려서 뒤쳐진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꼭 뒤쳐지란 법은 없다. 아무리 바보라고 놀림을 당했더라도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산다. 따라서 아이들의 다양성을 전제한다거나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한다면 경찰력을 동원하는 극단적인 처방은 부적절하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폭력을 꼼꼼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학교는 성장기의 아이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아이들의 다양한 태도 앞에 교육방법의 한계를 실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강하고 쉬운 방법만 찾는다면 교육적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지금 불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대처가 결과론적인 현상에 주목할 때 더욱 그럴 것이다.

왜 아이들은 패거리를 만들고 폭력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려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의 극단적인 폭력과 파렴치한 폭력을 교육적인 연장선상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들은 왜 폭력성을 띠는 것인가. 인류역사상 폭력이 중단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는가. 60년대와 70년대도 학교폭력은 있었고 패거리도 있었다. 그들과 다른 것은 보다 조직화되고 보다 광범위해지고 더 치밀해진 것의 차이일 뿐이다.

당연하지 않는가. 인터넷과 휴대전화기의 쪽지로 주고받는 정보의 신속한 교류는 수공업적으로 자라온 어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탐구심을 자극하는 어른들의 풍부한 유흥방식은 아이들의 교과서가 되어 있지 않는가.

다시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또 학교 밖에서 아이들이 넉넉하게 놀 곳이 있는지 말이다. 폭력의 문제를 거꾸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이 공부, 공부말고 "너 뭐하고 노니"로 존중해 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폭력은 '보복'이라는 사회적 심리현상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가학성을 띠지 않고도 즐겁다면 왜 보복적 폭력이 늘겠는가. 따라서 아이들의 욕구불만을 풀어주는 제도가 등장할 때 폭력은 원천적으로 예방될 것이다. 아이들의 폭력은 문화현상의 하나이고 아이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들의 눈높이에서 제도화되지 않을 때 아이들의 폭력에 대한 보복적 대응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다.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생활문화로부터 접근하자. 교사들은 지식을 전하는 교과교사로부터 아이들의 생활문화교사가 되는 것이다. 공부에 대해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자기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노영필((사)광주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금구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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