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
여성할당제,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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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농촌은]정성숙 전남 진도

 며칠 전에 동네 아저씨가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자네 집사람한테 농협 대의원 하라고 하게.” 하더란다.

 남편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내게 직접 권유를 한 게 아니고 남편의 인가라도 있어야 할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늘, 그리고 항상 보조자(혼자서는 절대로 주체적일 수 없다는)로 규정하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느낌도 동반됐다.

농협대의원을 한 번 해보라는 남편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는데 다음 날, 영농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 동네는 농협 대의원을 3명 뽑을 수 있는 데 그 중에서 여성조합원한테 배정된 대의원 1석이 나왔다며 젊은 내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할당제라는 설명 때문에 두 말 않고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때부터 기분이 묘했다. 사실은 말로 주고 되로 받은 것에 불과 했는데도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희망사항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기도 했다. .

사실, 오래 전부터 우리들이(여성)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제도였는데 외면만 당해오다가 뒤늦게 정책실행으로 나타나자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내 손에 쥐어지자 영락없이 강 건너 남의 일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대의원 동의서를 쓴 다음부터 게슴츠레했던 내 눈이 나 스스로를 놀라게 할 만큼 달라지고 있었다.

경제사업에 투자하고 몰두해야 할 농협이 신용사업에만 눈이 멀어 이자놀이에 타성이 젖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분노를 키우다 스스로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곤 했었다. 내가 어떻게 애써서 고쳐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또 의지 자체도 만들어 보지 않는 방관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안에서 적극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나 어떤 사실을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는 인간의 주체적인 적극성이 눈에 띄지 않지만 희망이 보이고 어떤 형체를 조금씩이나마 가늠하면서부터는 적극적인 태도에 탄력과 가속도가 붙는다고 본다.

여성은 배려 받으려는 생각은 언감생심 바라지 않아야 하고 배려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키워져 왔고 또 그런 풍토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태도는, 늘 뒷전에서 머뭇거리는 것에 익숙하다. 대문 안에서 까치발을 한 채 담장 너머 세상을 눈으로 구경만 해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성할당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농협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여성할당제가 실시된다면 우리가 만들고자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정성숙 전남 진도 농민 jnjn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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