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죄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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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 자유기고가

   
최근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아차 채용비리’나 ‘검사 아들 답안지 대필’같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기아차 채용비리만 하더라도 지역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첨예한 노사대립 속에서 섣불리 건들다보면 노조탄압 시비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지라 감히 정면으로 거론하지 못했을 것이다.

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지를 대필해준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먼지까지 털어내는 검사의 위세야말로 안전한 보호막이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실제로 검사 덕분에 개인적인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하니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요즘은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한다. 그동안 상류층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부동산 투기나 병역면제 따위로 부총리나 장관임명이 좌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한때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육군참모총장이 일개 군검찰에 의해 진급비리 개입혐의로 법원에 출두할 판이다. 정말이지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에게는 빌어먹을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육사교장이 시대를 탓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을까?

해방 이후 분단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어오면서 비정상적인 특권문화가 견고한 성을 쌓아왔다.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경제개발이란 미명 하에 부와 권력을 싹쓸이해왔다. 특권계층에 속하지 못한 민초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들과 결탁해서 떡 부스러기라도 취해야 했다. 그야말로 악어와 악어새처럼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한 나눠먹기식 패거리문화, 뇌물고리가 사회전반을 지배해 온 것이다.

노조라고 예외일리 없다. 노사간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약삭빠른 부류들은 강경투쟁을 무기삼아 사용자측과 은밀하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윈윈게임을 즐겨왔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반세기동안 형성된 반칙과 특권문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주류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민초들이 각성하고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 변화의 단초였다. 바로 인터넷으로 표상되는 시민 각자의 창발성이 특권문화를 깨부수고 우리 사회를 지각에서부터 뒤엎고 있는 것이다.

이젠 어느 누구도 이 거대한 물살을 거스를 수 없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서울도심에서 생전 안하던 데모도 해보지만, 대통령마저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면서 시대흐름에 동참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도도한 개혁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대가 바뀐 것이다. 기아차 노조귀족들과 답안지 대필교사는 바로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했을 따름이다.

/임 종 수 자유기고가 prsi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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