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시론]화해와 상생의 길
[지성시론]화해와 상생의 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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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전 한겨레 논설위원

   
▲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전 한겨레 논설위원
요즈음 세 사람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화제는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것이다.

내가 들어본 한, 그리고 친지들이 전해주는 현실을 보면,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동창회 모임에서나 택시 안에서나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욕설과 증오가 뒤섞인, 저주에 가까운 내용이 많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70년대 중하반의 '긴급조치' 시절에는 대통령 박정희를 가볍게 비판해도 감옥에 들어가 몇 년이나 갇혀 있어야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도 공포정치는 서슬이 퍼랬다.

거기 비하면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상소리로 욕해도 경찰은 물론이고 정보기관도 모른체하는 오늘은 민주화가 절정에 이른 시기임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서 완성을 향해 끝없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다. 그러나 어쩐 셈인지 지금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민주화의 그림은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서투른 만화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민주화를 이루는 핵심인 개혁의 전략과 이념이 처음부터 잘못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 잘못의 한 복판에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통합을 그릇되게 이해하고 성급하게 정치적 주판을 놓은 집권세력의 실책이 자리잡고 있다.

 2002년 12월18일의 대통령선거 결과가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드러났을 때, 그를 지지한 사람들, 다시 말하면 8 15 이래 수십년의 현대사에서 진보와 개혁의 편에 서 왔다고 믿은 사람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 승리는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같은 맥락이면서도 한 차원 높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교묘하게 추진된 지역 분열 정책이 이제야 역사의 쓰레기장으로 가게 되었다고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남인이니 그렇게 오랫동안 영호남을 괴롭히던 지역감정도 이제는 크게 누그러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12월에서 두 해 남짓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의 길로 가기보다는 집권세력을 적대시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김대중 정권 시기에는 권력을 비난하고 거부하다시피 하는 주력이 영남인들이었는데 이제는 거기에 호남인들이 가세한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난해 8월과 12월에 호남지방을 돌아보았다. 나이 든 이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대다수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심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 어린이들도 알듯이 1998년 외환 위기 때보다 심하다는 불황이 한 원인이겠지만, 더 근원적인 까닭은 통합과 개혁이 비틀거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었다.

 새 집권세력은 대통령 취임식 전부터 ‘탈호남’과 영남을 향한 동진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한 전략을 밀고 나갔다. 김대중 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호남만으로는 개혁을 이룰 수 없을 테니, 그리고 영남을 포용하지 않고는 정치적 안정을 구하기 어려울 테니 영남 표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략이 영남 민심을 얻기는커녕 전통적 지지세력인 호남 대중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것은 지난번 지방자치 재보선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위한 개혁을 다시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번 대선 직후 노무현 ‘승자 진영’이 ‘반개혁 세력’이라고 한묶음으로 몰아 배척했던 정치인들 중 정말 그런 소리를 들어 마땅한 몇 사람만 빼고는 잘못된 판단을 사과하고 재결합을 시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호남은 선거 때도 탄핵 때도 절대로 ‘우리’를 지지하기 마련이니 영남과 다른 지역에 공을 들이면 권력은 '우리 손‘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노무현 정권이 참으로 화해와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호남인들이 겪어온 멸시와 푸대접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밝히고, 오래동안 혜택을 받고도 근래 짧은 기간의 소외를 못견뎌하는 영남인들이 있다면 그들의 눈과 귀를 이성의 방향으로 열어주어야 한다.

/김 종 철 전 연합뉴스사장, 전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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