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선생은 광주 숭일소학교를
나와 망국의 한을 안고 스무살이 되던 해인 1933년 중국으로 남경으로 건너간 뒤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해 항일운동을
벌이고 중국혁명에도 참가해 '연안송(1938년)', 중국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행진곡(1939년)' 등을 작곡해 중국 인민들의 사랑과 추앙을
받았다.
1941년 주은래의 양녀인
정설송과 결혼 후 필로군에서 항일투쟁 활동을 하는 등 혁명가로서의 삶을 유지한다.
특히 일생동안 동요에서
오페라, 영화 음악 등 360여곡을 작곡하면서 중국의 3대 음악가 중 한명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노래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 서곡으로도 연주돼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