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역사행위”
“통일은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역사행위”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4.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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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작가 고은 시인 전남대학교 특강

▲ 고은 ⓒ김태성 기자 ‘만인보(萬人譜)’의 작가 고은 시인이 ‘사람이야기’로 전남대를 찾았다. 고은 시인은 지난 8일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정책과정이 마련한 제1회 문화마당 특강에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인물열전’의 보따리를 풀어놨다. 고은 시인이 이날 제일 먼저 불러낸 인물은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였다. 우리에게 소설가로만 알려진 위고가 프랑스에서 극작가로 더 알려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를 쓴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은 시인은 “1946년 해방직후 발간된 첫 국정교과서에 이육사 시인의 광야와 위고의 서정시 4편이 실렸었다”며 “위고는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었으며 목수일도 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는 인간이 최초로 어머니 몸 속에서 나와 우는 울음’이라는 위고의 시를 인용하며 “위고의 시론에 따르면 인간 모두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평생 시나 쓰다 죽으라고 무기징역형을 받은 것이 시인”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이 두 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다름 아닌 단군왕검. 그는 “단군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며 “신화와 역사가 분별되지 않은 시대지만 단군신화를 역사행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생물의 존재를 하나의 시원으로 환원한 단군신화는 대단히 비과학적이며 부성보다 모성이 더 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군을 기원으로하는 남성중심의 계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생명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단군들을 만날 수 있다”며 “개인은 수많은 종족과 고향, 계보를 지닌 복수의 존재”라고 규정했다. “단군신화 위안으로 만족해야…역사 행위로 해석해서는 안돼” “인간은 티끌 불과하지만 무한과 태초와 약속된 거룩한 존재” “민족은 하나의 생명…두 개의 한국은 둘 되는 것 아닌 죽음” “다산학 아직도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여전히 유효성 담지” “추사 김정희는 몽롱한 가운데 본질과 만난 진정한 예술인” 그는 또 “광막한 우수 속에서 나란 존재는 티끌만큼도 못한 존재지만 이를 반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티끌 하나를 위해 무한의 시간이 소요되듯이 인간은 비록 티끌이지만 무한과 태초와 약속된 거룩한 존재인 까닭”이다. 이 때문에 시인은 “단군왕검이 한때 식민지와 일제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우리민족에게 위안이었지만 이제는 신화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 고은 ⓒ김태성 기자
고은 시인은 이어 조선왕조 5백년으로 이야기를 국한하자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임금으로 ‘세종’을 꼽았다. 문자를 창제하고 음악에 문법을 부여했으며 근대지도를 제작해 현재의 한반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한자나 라틴어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근세에 만들어져 가장 위대한 문자”라며 “한글 만한 문자기호가 없다는 것이 세계적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만주라는 거대한 대륙을 지배했을 것이라고 개탄했지만 한나라의 진실성은 과장하거나 왜소할 필요가 없다”며 “알뜰살뜰 통일만 되면 한반도는 더 이상 클 필요도 없는 이상적인 땅”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은 시인은 “민족은 하나의 생명”이며 “두 개의 한국은 생명체 이론으로 따지면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시인은 이어 “그 동안 통일도 못시키고 땅이 쪼개져 살았는데 사람인들 제대로 살았겠느냐”며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역사행위가 바로 통일”이라고 밝혔다.

고은 시인은 또 가장 위대한 군인으로 이순신 장군을 소개했다.
이순신 장군이 문무겸비를 겸비하고 정권을 탐하지 않은 진정한 무인이었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최고의 학자로 뽑혔다.
고은 시인은 “다산은 조선이라는 강의 하류에서 모든 학문을 받아들여 집대성 한 최고의 학자”라며 “한국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아직도 다산학은 유효성을 담지한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했다.

고은 시인은 이어 “녹두장군 전봉준이야말로 고통 가운데서 탄생한 민중성의 표상”이라며 “동학을 기반으로 했지만 순수한 농민운동을 조직했으며 일본군과 대원군의 회유를 물리치고 죽음을 선택한 순결한 민중의 표상”이라고 극찬했다.

고은 시인은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를 “몽롱한 가운데 본질과 만난 예술가로 적극 평가했다.

그는 추사가 “사물과 대상을 꿰뚫어 보는 투시의 눈(금강안)과 대상의 진실을 끌어낼 수 있는 손(홍의수), 진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핵지이)를 가진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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