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따뜻한 밥상공동체 만들기<2>
[삶의향기]따뜻한 밥상공동체 만들기<2>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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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안[빛고을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며칠 전 우리 집에서 마을모임을 했을 때다. 

빛고을생활협동조합(이하 빛고을생협)에서는 매달 가까이 사는 조합원들끼리 모여 마을모임을 하는데, 여기서는 조합 운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비롯하여 생활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는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면서 월동배추로 담근 새 김치가 꽤 맛이 있기에 솜씨 자랑도 할 겸 감자수제비를 함께 끓여 먹기로 했다.

안건토론이 끝나갈 무렵 멸치, 다시마 국물을 만들려고 부엌으로 나서자, 조합원 한 분이 일을 거둔다고 뒤따라 왔다. 그런데 부엌살림이 참 친근하다며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꺼내어 놓은 멸치와 다시마 봉지도 자기 집의 것과 같고, 소금도 같고, 주재료인 수제비 봉지도 먹어보았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생협을 통해 주문하고 구입한 같은 재료들이다. 그 순간 ‘아! 그래, 우리 600여명의 조합원들이 한 식구처럼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한 집의 한 식탁에 모여 앉아 밥상을 받지 않더라도, 함께 신뢰하는 건강한 먹을거리들로 차리게 되면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밥상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친정에서 보내준 감자를 딸네들이 이 집 저 집에서 쪄먹고 볶아먹고 하면서 고향의 푸근함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생협에서 구입하는 음식 재료가 시중의 그것보다 조금 비싼 유기농 건강식품이기에 결속력과 공동체의식을 나눌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입하여 먹는 재료들은 모두 생산자의 얼굴이 환히 들어 나고 생산과정이 전부 공개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현지 견학이나 계절별 행사, 인터넷과 편지글들을 통하여 소비자-생산자의 사귐이 충분해져서 서로의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집에서 상추를 씻고, 부추를 다듬으면서도 환히 웃고 반기시던 생산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은 한 가정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조합원 가정이 공유하니 꽤 큰 밥상공동체를 만들어 갈 기초 근거가 된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좋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음식이 몸과 마음을 만든다’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도 있겠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에게서 어수선하고 집중력이 약한 행동과잉증상을 많이 엿볼 수 있다. 그 원인이 식품첨가물이 많은 든 음식물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육류의 섭취가 많아지면서 대장암이 많이 발생하고, 인스턴트식품들이 많아지면서 아토피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질병을 고치고 성격을 고치려면 잡곡밥과 채소를 꼭꼭 씹어 먹으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우리 몸과 땅의 밀접한 관계를 무시하고 우선 싸면 먹고 보자는 수입개방의 압력이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난 먹을거리조차도 단지 장사의 수단이 되어 함부로 팔려나간다. 서로 누가 생산하고 누가 먹는지를 따져보지 않는 구조이기에 함부로 약도 치고, 화학첨가물도 섞는다.

   
▲ 밥상

또 소비자들은 포장과 선전에 휘둘리면서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사먹고 산다. 밥상을 받아놓고 보면 국적 불명, 생산자 불명, 가공자 불명 등 의심투성이 것들로 채워질 때가 많다. 그런데도 허겁지겁 배만 채우는 밥상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에 빈자리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결국은 질병만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 가족 같은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먹을거리들로 밥상을 차리고, 온 식구들은 한 상에 둘러앉아 천천히 씹어 삼키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일, 아주 귀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우리의 먹을거리 유통이나 제도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하고, 먹을거리가 얼마나 우리 몸과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여야 할 때다.  

마을모임에서 쫄깃쫄깃한 감자수제비에 생김치를 걸치면서 우리 마음은 서로 흐뭇하고 따뜻했다.

/이희안[빛고을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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