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의 반란
주부들의 반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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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장흥 공공도서관에서는 매년 11월이 되면 주부들의 전시회가 열린다. 이는 장흥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주부들의 모임인 팝콘 스케치의 잔치. 이들이 장흥 공공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문화강좌 덕분.

2003년 현재 이사를 가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빠져나간 주부들을 제외하고 2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팝콘 스케치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정자영(41)주부는 2000년도 상반기 문화강좌가 처음 시작 될 때 친구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그림반에 나가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했었는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살다 보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게 세월만 훌쩍 갔다. 뒤늦게 꿈에 그리든 그림을 다시 배우고 직접 그리면서 전시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보람되고 잃었던 자신을 찾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남편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나 보다 오히려 좋아하며 미술 재료들을 준비해주고 뒷바라지를 잘 해준다. 심지어 집에 화실까지 마련해주겠다며 나서는 통에 사실 고마우면서도 아직 능숙한 솜씨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이들까지 엄마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친구들에게 엄마를 자랑하고 친구들을 집까지 데리고 와서 내 그림을 보여줄 때 한편으로 가슴이 뿌듯하며 그림을 시작했던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 한다.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만자(39) 주부는 결혼하고 오직 집안일에 파묻혀 살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준다는 아이들의 이야길 듣고 도서관에 나갔다가 뎃생 스케치를 무료로 가르친다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단다.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어릴 시절 그토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생각이 나 당장 접수를 했다.그림을 배우기 위해 매주 수요일이 다가오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즐거워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2000년도에 첫 전시회에 참여하고 내가 직접 그렸던 그림이 액자에 넣어져 걸어지는 걸 보니 너무 좋아 식구들을 다 초청하여 그림을 보여주었다. 전시회에 왔던 남편과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아했다"고 거들었다.

20여명의 주부들 모두가 평소 집안일에 묻혀 자신의 꿈을 펼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식구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가 뒤늦게 시작한 그림공부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3년 가까이 그림공부를 지도해주고 있는 위명온 선생은 주부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집안일에만 묻혀있던 주부들이 새로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팝콘 스케치가 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장소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이젤이나 석고등을 제공해주고 그림을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 배려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정밖에 몰랐던 주부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2003년 네 번째 전시회는 전시회 도록도 처음으로 20여명의 작품을 함께 실었다. 전시회 도록 첫 페이지에 회원들의 초청인사말이 주부들의 마음을 잘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다.

"바싹 마른 장작개비처럼 물기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나이테를 그을 이 가을! 씽그대 위에 둔 ‘바케트빵‘을 커피한잔과 함께
불혹의 점심을 먹기 위해 칼질합니다. 아, 갓 구었을 때의 향기롭고 부드럽던 것과는 사뭇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그 귀한 것 버릴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그 빵을 사려했던 때의 본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했던 맘이 퍼석이는 마른 빵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처럼 시간이 흐르더니 우리네 가슴 속 가득한 열정이 사르러질 듯 합니다. 주체할 수 없이 넘치던 그 그리움과 열정 다 어디로 밀어냈는가 싶습니다. 언제 그랬냐 싶게 오간지 모르게 그리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미영 꽃 닮은 팝콘의 열정 벙글었습니다.
가만 가만 내밋 거리는 순한 향기 따라 가뿐한 발걸음 모두어 주시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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