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경멸하는 가난한 나라
가난을 경멸하는 가난한 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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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문학과지성사, 2003.

일주일 중 닷새 내지는 엿새 동안 뭔지는 모르지만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나머지 하루 또는 이틀 동안 근처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이 알고있는 최대한의 지적인 언어로 대화를 한 후 클래식음악이 깔리는 대형마트에서 최대한 우아한 동작으로 카트를 밀면서 다음 날 드라이브코스를 상상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는 최소한 이 사회에서 중산층의 일원이라는 안도감을 느껴도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면서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면 안 된다. 지갑에 남은 지폐의 숫자를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계산해서도 안 된다. 괜스레 어깨에 힘을 주는 유치함을 범해서도 안 된다. 그 순간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아주 촌스러운 빈곤의 악취를 풍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가난이란 게 그렇다. 단 한 번이라도 가난을 경험해본 자는 그 땟자국을 지우지 못한다.

지울 수 없는 빈곤의 흔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아함은 훈련되는 것이고 의지를 필요로 한다. 숭고함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우아함과 그 친구들은 돈에서부터 나온다. (이렇게 말하면 그 친구 중 하나인 '지식'이란 녀석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아니 솔직히 돈 없는 지식이 고급레스토랑에 초대되는 일이란 없지 않은가. 기껏해야 다운타운의 어느 지하 바에서 아르바이트 여급에게 사회에 대한 신경질적인 공론을 펼치는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리고 당연히 돈은 도덕을 선물한다. 이것을 말 그대로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의지와 도덕률과 돈이 동시에 필요하다. 때문에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이 사회에서는 특권이다. 비싼 승용차의 번들번들함 뒤에서 싸구려 욕설을 내뱉지 않아도 되며, 동창회같은 모임에서도 구석자리에서 침묵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가난은 불편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 사회에서 가난은 죄악이다. 추함이며 부도덕이다. 악취를 풍기는 하수구와도 같으며 하수구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던지는 담배꽁초와도 같은 것이다. 가능한 가장 비굴한 표정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차비를 구걸하는 어느 노파의 입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을 때의 불쾌함, 깨끗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너무나 선명하게 찍힌 김치국물자국을 한사코 가리고 있는 손끝의 짜증스러움, 작정한 듯한 촌스러운 말투로 아무데서나 큰소리로 지껄여대는 사내들을 멀찌감치 피해 걷는 발길, 맞벌이 부부의 어느 날 아내가 '나, 임신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남편의 어지러움, 아이가 덜컥 병으로 입원했을 때 사정이 넉넉한 친척이나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생각하는 누추함, 죽은 부모의 유산과 장례비용을 상의하는 백열등 아래의 무수한 신경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설이나 논문을 쓰고 밤새워 피운 담배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 모두 가난이다. 미학적으로 전혀 아름답지 못하며, 모두 수치와 경멸의 대상들이다. 가난을 경멸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가 바로 이 땅인 것이다.

가난은 분명히 거대하게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할 따름이다. 빈자와 부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가난이 바로 이 소설의 테마다. 그러므로 배수아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정해져있지 않다. 궁핍하고 가난한 삶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 소설처럼 읽히기 위한 유치한 트릭일지도 모른다. 아무렇거나 상관없다. 어차피 주인공은 가난이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내의 지갑과 아랫도리만을 바라보고 사는 전직 대학교수 출신 실직자, 두 아이를 데리고 직업도 없이 부자 동네에서 수준을 맞추느라 허덕거리는 여자, 가장 댄디한 문화를 누리면서 사실 가장 빈곤한 삶의 내피를 지닌 맞벌이부부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에게서도 피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이제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이 땅의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도덕이다.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든 지나친 자기애와 자의식이든 우리의 영혼은 이미 빈곤의 늪에 젖어 있다.

뻔한 소리지만 빈곤은 가난하다는 말이다. 가난하다는 말은 돈이 없다는 말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다. 추함은 부도덕과 같은 부류다. 그리고 도덕이 없는 삶에 남는 것은 극한의 현실일 뿐이다. 부암동 골목길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는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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