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메의 젖가슴 같은 가을이 흔들리고 있다
할메의 젖가슴 같은 가을이 흔들리고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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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함창 공갈 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주마. 우리 부모 섬겨다오' 내 고향은 모심기 노래의 고장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일명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도 불리 우는데 누에고치, 쌀, 곶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좌우로는 산이 마을을 휘감고 돈다.

고향은 이제 가을이다.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부모님은 가을걷이에 눈 코 뜰 새가 없으실 것이다. 뒤뜰에는 밤이 영글어 떨어지는 소리에 다람쥐가 잽싸게 달려와 겨울 식량을 준비 하느라 바삐 쏘다니고 마당의 감나무는 할메(할머니) 젖가슴처럼 축 늘어진 감을 푸른 하늘이 미어터지도록 그득히 펼쳐 놓았을 것이다.

어릴 적 감이 익으면 시야(형님)두 분과 나 그리고 동생 모두가 감나무에 달라붙어 종일 감을 따곤 했다. 그렇지만 감 따는 일은 보기보다 훨씬 힘든 일이어서 뽀빠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나씩 꺼내먹는 동무들을 보면 감나무아래 붙잡힌 나는 신세가 처량하여 입이 댓 자나 나오곤 했지만 감 따기는 한해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저녁상을 물리면 온 가족이 비 가림을 한 건물에 새끼줄을 늘어 뜨려 놓고 낮에 따 놓은 감을 칼로 깍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시야와 나는 한손엔 감 한손엔 칼을 들고 시계만 바라본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만 굴뚝같다. 몇 날 며칠을 깍다 보면 손이며 옷이 감물로 검게 물들곤 했다. 새끼줄 맨 아래에서 감꼭지를 끼고 있는 부모님의 손은 또 얼마나 거칠고
투박했던가.

곶감은 수 백 접이나 되었다. 그것들을 처마에 나란히 걸어 놓으면 그것은 자연과 삶이 이룬 마치 장엄한 설치미술과도 같았다. 그렇게 곶감을 만들고 남은 감을 칼로 쪼개서 채반에다 늘어놓아 말리는데 그것을 감또개라고 한다. 감 껍질도 버려서는 안 되는 긴 겨울의 귀한 군것질의 하나여서 역시 정성들여 잘 말려야 했다.

감을 매단지 15일에서 30여일이 지나면 겉은 거무틱틱하면서 차츰 딱딱한 층이 생기고 속은 남자의 불 알 주머니처럼 몰랑몰랑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그때 표시 나지 않게 한 개 한 개 옆집의 곳감을 몰래 따먹던 재미는 지금도 이곳 장흥에서 계속 재현되는 하나의 풍경이다. 그때만 해도 서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설사 들켰다 해도 간단한 지청구로 쉽게 용서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준엄한(?) 법의 심판이 기다리는 경우가 많으니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다.

감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한 홍시다. 홍시는 언제 어떻게 먹으면 맛이 좋을까? 한 겨울 상주는 매우 추운 곳이다. 눈이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 때 가을에 누에고치 채반에 앉혀 놓은 감을 접시에다 톡 터뜨린 다음 백설기 떡을 찍어 먹는 맛이란…, 생각이 난 김에 광에 가서 홍시를 가져와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장흥으로 온지가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처마 새끼줄엔 곶감이 걸려 있고 광엔 홍시가 앉혀져 있고 채반에는 감또개나 껍질이 말라가고 있다. 내 고향 상주의 어릴 적 추억과 삶이 이곳 장흥으로 함께 이사 온 듯하다.
장흥이 낯설고 물 설은 곳이어서 여러 가지로 서툰 것이 많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무엇이 그리 다르랴.

감을 깍고 나무를 만지고 마늘을 심고 호박을 썰어 말리면서 이곳 장흥 사람들과 함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또한 지금의 삶을 성실히 나누는 것, 그것이 새롭게 이루어갈 생(生)의 감(感)이며 충만한 내용이 아닐까? 지금 창문 밖에는 바람불고 감나무 가지마다 그득 할메의 젖가슴 같은 가을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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