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바다가 그린 수채화
진달래와 바다가 그린 수채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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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수 산이야기 ⑭ 영취산(510m· 전남 여수)


봄 햇살이 화사하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꽃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도로변에서는 왕벚꽃이 화려함을 뽐내고, 산비탈에서는 산벚꽃이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양지바른 밭에 핀 분홍색 복사꽃은 우아하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진달래다. 산비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가 연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봄은 무르익을 대로 익는다. 아리따운 연인 같은 진달래의 매력을 찾아 나서는 발길이 바쁘기만 하다.

두 아들과 함께 여수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탄다. 영취산으로 오르는 여러 등산로 중 우리는 상암동 상암초등학교에서 450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택한다. 붉은 색을 띤 영취산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상암초등학교 옆 마을을 지나 오른쪽 산비탈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복숭아밭에 은은하게 핀 복사꽃이 우리 식구를 맞이한다.

"너무 예뻐 미치겠네"


보라색으로 핀 제비꽃이 여러 야생초와 함께 봄을 즐기고 있다. 맑고 고운 새들의 합창이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가끔 울어대는 장끼의 울음소리에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애처로움이 있다. 임도를 지나자 억새와 진달래밖에 없는 민둥산이다. 억새밭이 넓게 펼쳐지고, 듬성듬성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다가 점점 진달래 천지로 변해간다.

붉게 핀 진달래 너머로 쪽빛 바다가 출렁인다. 진달래를 통해서 본 바다물결은 이미 붉은 색이다. 여천공단의 잿빛 건물과 굴뚝들도 오늘만은 진달래 덕분에 부드러운 이미지로 바뀌었다.

"꽃이 너무 예뻐서 미치겠네."
앞서가던 아주머니의 감탄사가 진달래꽃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길 양쪽으로 진달래밭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날 때는 꽃마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450봉에 도착하자 인산인해다. 사람들의 말투만 들어보아도 팔도에서 다 모였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정상쪽으로 피어있는 진달래는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고, 거기에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다. 여천공단이 북쪽으로 자리잡고 그 뒤로 묘도를 비롯한 작은 섬들이 고막껍질을 엎어놓은 것처럼 바다에 떠 있다.

남쪽(왼쪽)은 주로 바위들이 벼랑을 이루고, 북쪽(오른쪽)에서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운치를 더한다. 암봉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진달래천국이다. 진달래천국에서 울긋불긋 옷을 입은 사람들이 벌과 나비가 된다. 진달래꽃밭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에게 자유와 평화가 넘쳐흐른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에게 있어서 진달래는 항상 어린 시절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보면 항상 정겹고, 마음이 순수해진다. 정상에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암봉과 진달래, 450봉의 누런 억새가 행복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자 흥국사가 내려 보인다. 온산을 붉게 채색한 진달래는 정숙하고 해맑은 전통적인 한국 여성 이미지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암자가 있다. 도솔암이다. 도솔암으로 들어서는데 시누대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염불을 한다. 등산로에서 5분 거리도 채 안되지만 대부분의 등산인파가 곧바로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암자는 고요하고 그윽하다. 영취산 9부 능선에 자리잡은 도솔암에 들어서니 본사인 흥국사가 내려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너머로 푸른 바다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암자주변에는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자리잡아 아름다운 풍경까지 갖추었다.

청정공간으로 남아있는 흥국사


임도가 나 있는 봉우재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곧바로 405봉으로 통하는 진달래꽃밭을 걷는다. 무뚝뚝한 바위와 부드러운 진달래가 서로를 보완하며 남도의 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가족단위로 온 상춘객들이 진달래가 만든 꽃 대궐에서 오순도순 즐기는 모습에서는 행복함이 배어 나온다. 꽃은 자신도 아름답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한다. 꽃이야말로 사람의 얼굴을 예쁘게 해주는 최고의 화장품이고, 마음을 맑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405봉에 올라서서 정상쪽 봉우리와 붉게 채색된 수채화를 바라보는 마음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산줄기는 439봉으로 가면서 점차 숲길로 바뀐다. 439봉에서 흥국사로 내려간다. 막 싹을 틔운 활엽수의 연두색 새잎이 신비롭고 귀엽다.

흥국사로 들어선다. 천왕문과 봉황루, 법왕문을 지나자 대웅전(보물 제369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붕긋한 산봉우리가 부처의 육계 같다. 정면3칸 측면3칸에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은 축대 위에 높은 기둥을 사용하여 훤칠하면서도 장중하다.

대웅전 앞마당 한쪽에 서 있는 석등의 모습이 특이하다. 돌기둥 아래에 천진한 표정을 한 거북이받침을 한 석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대웅전 부처님 뒤에 걸어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에 눈길이 멈춰진다. 석가여래가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었던 영취산에서 법회를 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다.

대웅전 뒤로는 불조전, 팔상전, 응진전이 자리잡고 옆으로 무사전이 자리잡아 규모가 제법 큰 가람을 이루고 있다. 여천공단에서 뿜어내는 각종 공해 속에서도 청정한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는 흥국사는 매연에 찌들려 사는 이 지역사람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한다.

천왕문을 벗어나자 화사한 벚꽃이 일주문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일주문 앞 계곡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지개다리가 있다. 반원을 그린 무지개다리는 언제 보아도 그 솜씨가 정성스럽고, 그 모습이 우아하다.
"아빠, 얼른 가요."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상암초등학교(50분) → 450봉(30분) → 정상(20분) → 봉우재(50분) → 439봉(40분) → 흥국사 (총 소요시간 : 3시간 10분)
*봉우재(1시간) → 흥국사
-. 제2코스 : 예비군훈련장(40분) → 450봉(30분) → 정상(20분) → 봉우재(50분) → 439봉(30분) → 절고개 (총 소요시간 : 3시간)
▷교통
-. 호남·남해고속도로 순천교차로에서 17번 국도 여수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여천공단 입구인 석천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5분 정도 달리면 둔덕삼거리가 나온다. 흥국사는 석천사거리에서, 상암초등학교는 둔덕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 여수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상암동 가는 시내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고, 흥국사행 버스도 하루 14회 운행된다.
www.chosun.ac.kr/~gs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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