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보장돼야 건강한 사회지요'
'다양성 보장돼야 건강한 사회지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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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광주전남지회장 홍경표>
"검진 대상학생들 90%이상이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대개 수배되고 나서 몇 개월 뒤부터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직 큰 병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위장병 등이 나타나는 것은 수배의 불안감 때문인 것 같아요."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수배중인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정치적으로도 의료혜택차원에서도 소외되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집단적으로 검진한 '배짱 좋고 맘씨 좋은' 의사가 있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광주전남지회의 홍경표 회장(45. 홍경표내과원장). 인의협 동료의사와 함께 건강검진을 했던 홍회장은 당시 수배학생들의 진료에 앞서 "전쟁에서도 적군이 부상당하면 치료해주는 게 의사의 책무"라며 스스럼없이 진료에 임했다.

한총련 수배학생들 건강검진 나선
광주전남 인의협 소속 의사들


홍회장의 이같은 소신의 바탕엔 인의협이 있었다. 87년 6월항쟁 때 처음 집단적으로 흰까운을 입고 거리로 나섰고, 부상당한 학생과 시민들의 치료에 나선 이들의 모습은 당시 민주화의 열기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기록돼기도 했다. 그러나 인의협은 지난 98년 의약분업과정에서 당시의 분업안에 반대를 주장하던 의사협회측으로부터 이른바 집단따돌림을 받았다. 반면 이같은 시련은 국민들에게 '소신과 양심집단'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도 89년에 인의협이 결성됐다. 하지만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사회 내부 갈등 속에서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다. 반면 또 다른 쪽에선 재건의 깃발이 올랐다. 이때 깃발을 치켜든 사람이 당시 의사협회의 의쟁투위원이자 광주의사협회 이사이기도 했던 홍회장. 91년 광주시 운암동에 개업한 이후 자신의 일만하면서 의사사회에서 나름의 위치도 잡아가던 그가 '따돌
림'의 길을 선택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98년 의약분업하면서 인의협이 서울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요지는 '지금껏 의사들이 부당하게 가져왔던 음성소득을 양성화시키고 대신 정당한 수가보전을 요구하면, 그 과정이 바로 의권(醫權)을 지키는 것이며 환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

"그 얘기가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거예요.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어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인의협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과거 회원명단을 챙기는 일부터 시작했지요."

87년 까운 입고 거리에 나서
의약분업 때 '양심적 집단' 이미지 각인


물론 이후 5년간 이 지역조직을 이끌어오면서 이렇다하게 회원이 크게 확대되거나 굵직한 활동성과를 남기진 못했다.

그러나 무인가시설 진료활동과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한 무료진료, 최근엔 국가인권위와 함께 인의협차원에서 진행한 교정시설 의료실태 조사(본보 1월29일자 참조)와 같은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의사로서 환자를 살피는 일외에 정치적 활동과 관련한 고민은 늘 있는 법.
지난 대선에서 홍회장은 자신의 병원건물 외벽에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마음엔 노무현 후보를 두고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이 요청을 해오자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

초등학생 아들이 '아빤 권영길 찍을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얘기해줬단다.

"민주주의는 평등해야 한다. 소수라는 이유로 모두가 권영길 후보에게 벽을 내주지 않는다면 이분들은 어떻게 하겠니".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한나라당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겠네요'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는 웃으며 "그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란다.
그는 의사사회에서 의협과 인의협의 문제나 한국사회에서 한총련의 문제 역시 이같은 원칙적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한총련, 인의협, 노동자, 소수자의 공통점
"다양성 보장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


"월드컵 때 모두 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훌리건처럼 표현하는 사람도 나타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려오면 환영하는 사람도 있고, 계란던지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갈등하고 인정하면서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끌어지면 되지 않겠어요."

결국 그는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이를 위해선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이는 인의협이 지향하는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져야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 소외, 차상위 계층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향해 있었다.

이와 관련해 그가 들려준 얘기가 있다. 얼마 전 새해를 맞으면서 세계인들의 소망을 인터뷰한 방송을 봤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과 자신에 관한 소망을 얘기하는데 외국의 소시민들이 세계의 평화를 소망하더라는 것이다. 마치 한국사회에선 '사회지도층인사'들이나 할 법한 그런 얘기들을. 그에겐 충격이었다.

"학교에선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배웠지만 우리의 현실사회에선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있어요. 대단히 자기중심적 사회가 되고 있지요. 개인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개인들이 있으려면 건강한 사회가 동시에 실현돼야 해요. 이를 위해서 사회의 민주화가 더 필요한 거죠."

그런 사회를 위해 그는 인의협활동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의협이 없어지는 세상이 그가 바라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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