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꿀벌의 늦은 귀가
어느 꿀벌의 늦은 귀가
  • 문틈시인
  • 승인 2024.06.1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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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어느 날 나는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 오르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하늘은 어둠과 빛이 섞여 낮과 저녁의 경계에 있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녹지대에 이르러 잠시 클로버꽃들이 피어 있는 즈음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물어가는 연약한 빛은 꽃들의 가장자리에서도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막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꽃들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어둠이 밀려드는 꽃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한 마리 꿀벌이었다.

나는 문득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7시를 넘어섰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꿀벌 한 마리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꿀벌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한참을 서서 꿀벌의 늦은 노동을 눈에 불을 켜듯 지켜 보았다. 어쩌다 이 꿀벌 한 마리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혼자 남아 어둠과 빛의 교차하는 늦게까지 꿀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나는 동정심과 함께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꿀벌은 자신에게 하루치의 할당량을 다 못 채운 탓에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마지막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보통 꿀벌은 어두워지기 전에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서 온갖 꽃들로부터 따온 꿀과 꽃가루를 창고에 쟁여 놓고 밤새도록 수만 마리가 날갯짓하여 수분을 증발시킨다. 집에 가서도 잠시도 쉬지 못한다.

나는 저녁답이 다 되도록 홀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눈을 비비며 꿀을 따러 날던 꿀벌이 마침내 클로버 꽃밭을 떠나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날아오를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때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꿀벌이 갈 길을 밝혀주기라도 하듯.

꿀벌은 마침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날아갈 생각을 한 모양이다. 꿀벌이 꽃밭을 떠나자 나도 발걸음을 움직여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는 내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홀로 꿀을 따기 위해 남아 있던 꿀벌을 생각하며 잠을 뒤척거렸다.

아침 일찍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저녁참에 밀물처럼 돌아오는 출근 행렬의 자동차들, 그 틈새에 잔업을 하느라 불을 켜고 밤늦도록 회사에 남아 일하는 노동자들, 119 소방경찰들, 헤아려 보면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코로나에 걸려 밤 열시에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그곳은 마치 꿀벌통처럼 붕붕거리며 의사,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야간 노동자들 덕분에 세상의 우리는 편히 잠을 자는 것이다.

나는 꿀벌의 헌신과 진지한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꿀 한 방울을 더 얻기 위해서 다른 꿀벌들이 일터에서 다 돌아간 뒤에도 홀로 남아 마지막 노동을 하는 꿀벌이 내 젊은 날을 떠올려 주었다. 나는 그때,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야근하느라 동료들이 다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오히려 호젓한 외로움이 좋았었다.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노동에도 말 못 할 기쁨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 꿀벌도 필시 그런 기쁨 같은 것을 안고 갔을 것이다. 벌통에서는 수많은 벌이 늦게라도 꿀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꿀벌은 벌통에서 군집 생활을 하는데 일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채 돌아오지 못한 꿀벌들이 늘 생기기 마련이다.

말벌 같은 것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다른 사고로 부상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어찌 보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교통사고로 35명이 죽고 1년에 32만여 명이 부상당한다.

꿀벌은 자연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사람보다 더 안전하긴 하겠지만 늦게 귀가하는 꿀벌은 무리들의 안도와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모두 늦게 들어온 꿀벌이 양껏 따온 꿀을 부려 놓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리는 봄날 저녁, 홀로 남아 꿀을 따던 꿀벌을 영 못잊을 것 같다. 사는 것이란 이렇게 눈물겨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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