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봄바람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3.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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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은 비단결 같다. 부드럽고 향기롭다. 혹독한 겨울을 인내한 만상을 부드러운 손길로 살포시 안아 준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나뭇가지들을 스치면 금방 마른 가지에 새눈이 튼다. 개구리 눈처럼 맺힌 도톰한 눈망울에서 파릇한 생기가 비친다.

아직 먼 산봉우리에는 희끗한 눈이 채 녹지 않았지만 여기 평지에는 푸른 풀잎들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 나무나 풀들만이 아니다. 땅으로부터 생동하는 기운이 내 몸에도 뻗쳐 오른다. 발바닥에서 허벅지로 팔로 몸통으로 머리끝으로 휘몰아온다.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고단한 삶에 지쳐 움츠리고 있던 내게 봄바람은 아연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벅찬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살아 있는 것 이상의 축복이, 성공이, 보람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내 안에서 봄이 전해준 생명의 불꽃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분명히 저 봄바람이 불어와서 일으켜 주고 있는 만물의 생동에 동기화되어 있다. 나무에서 새 움이 트면 나도 내 안에서 삶의 움이 튼다. 나는 그것을 강렬하게 느낀다. 생명이 재생하는 것 같은 부활 축제가 지금 막 시작되려는 찰나다.

봄바람은 그 안에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손길이 흙을 만지면 대지는 벅벅 푸른 물감을 칠할 준비를 서두른다. 벌써 남녘에는 매화, 산수유가 피었다. 봄의 점령군 소식을 듣는 양 나는 그다음 소식을 기다린다. 지금 나는 봄바람이 퍼뜨리는 기운에 전염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며칠 전 개천을 나가보고 벌써 계획을 세워 두었다. 들판에 봄빛이 짙어오면 하루종일 헤매며 봄 속에 노닐겠다라고. 손을 들어 봄바람을 만져보니 봄을 전하는 수많은 전령들이 오고 있음을 짜릿하게 느낀다.

봄바람은 봄이 새 소식을 실어 미리 보내는 전도사다. 봄바람이 전하는 소식에 모든 생명을 가진 동식물뿐만 아니라 눈 녹은 골짜기 물이 폭포, 개울, 강을 지나 바다로 가는 물결소리도 응답한다.

조금 더 날을 기다리노라면 먼 산에는 이내가 신부의 면사포처럼 어른거릴 것이고, 들에는 아지랑이가 대지의 혼령처럼 피어날 것이다. 봄이 와서 시작하는 일들을 바라볼 생각만 해도 온몸이 달떠온다. 와,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질 사태를 나는 어린아이처럼 놀라서 바라보리라.

봄바람은 대지의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고, 시인의 마음에 시를 샘솟게 하는 힘이 있다. 봄바람이 내뻗는 손길은 산과 들의 속삭임으로 나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제 나는 지난 겨울의 추위와 어둠을 떨쳐내고, 봄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새로운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갈 차비를 할 것이다.

봄은 선물처럼 내게 한아름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이 재생이요, 부활이다. 나는 봄의 도래를 인생의 축제처럼 맞아들이며, 삶의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봄바람은 내게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주는 복음이며, 나는 그 희망을 이뤄내는 데 힘을 다할 각오를 새긴다.

봄바람이 내 머리칼을 헝클어뜨린다. 나는 마냥 기쁘기만 하다. 그냥 웃고 싶어진다. 저 먼 바다를 건너 남녘 들판을 지나 내가 사는 마을까지 불어오는 바람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격동시켜 준다.

봄이 만물에게 회복기의 환자처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을 나는 눈물겨워 감격해 한다. 이제 나는 봄바람과 함께하여,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봄바람이 불자 하늘 땅은 신바람이 났다.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온몸에 신명이 난다. 새로운 시작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휘봉을 보며 연주를 시작하듯이 제각기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이 내 눈에 훤히 보인다.

하마 지금쯤 끝 간데 없는 남녘 들판의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는 푸른 풀들이 논두렁에 막 페인트칠을 한 듯 연한 푸른 칠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풀내음이 천지를 요동칠 것이다.

이 봄에 나는 한없이 착해지고 싶다. 봄바람이 그러라고 가만히 내게 속삭인다. 새로 부활하는 생명들은 다 착하다. 죽었다 살아난 나무들로부터 나는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봄에 모든 만물은 살아나야 한다. 착해져야 한다. 봄바람이 하늘에도 불어 하늘은 연한 봄빛으로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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