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힘들다
판사는 힘들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4.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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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법관에 대해서 존경심을 품고 있다. 억울한 일, 부당한 일을 당하면 법에 호소하고 이를 판사가 법전을 펴놓고 판단해 주는 어찌 보면 신부나 승려 같은 성직에 가까운 직업을 가진 높은 존재로 여겨 왔다.

지금까지 법정에 서서 판사를 대면할 일이 없었으니 더욱 그런 환상에 가까운 신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예전에 사람들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말해도 일방적인 불만 정도로 치부했다.

판사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양심, 소신, 독립, 정의 같은 말들이다. 법치국가의 최후의 보루가 바로 그런 말들을 거느린 판사라고 할 수 있다. 어지러운 국가사회의 질서를 지켜온 법관의 역할이 크고 중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해온 데에는 법을 수호하는 판사들의 노고도 계산해주어야 한다. 어쨌든 판사는 나라의 시스템을 유지해 주는 특별한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법관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이며 믿음이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법정에서는 피고와 원고 쌍방의 다툼을 가리는 권위의 아우라가 하늘을 찔러도 법복을 벗고 밖으로 나오면 평범한 일반 대중의 한 사람이다. 층간소음에 못 견뎌 위층 사람의 차량에 문을 못 열게 아교를 바를 수도 있고, 보이스피싱에 돈을 뺏길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판사도 사람이다. 따라서 법률 몇 조 위반했다며 법조문대로 마구 망치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인 관심사가 높은 엽기적인 살인이나 유명인의 마약, 횡령, 배임 같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범죄 행위들에 가끔 ‘정상을 참작한다’라는 판사의 양형 선고 이유가 내 흥미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범인이 살인했는데 고작 2년 선고라고?’ 하고 놀랄 때도 있고, 횡령 범죄에 20년 넘는 선고를 하는 경우에는 ‘살인한 것도 아닌데 20년이면 너무한 것 아냐?’’하고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판사가 두드리는 망치가 얄미울 때가 있다.

내 생각에 최근 20년 안팎일 것 같은데 특히 정치인의 범죄에 대한 판결이 판사의 이념 성향, 즉 좌냐 우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정치인에 대한 판결이 나면 정파별로 부당하다는 둥 불만을 표시한다.

대형 사건 범죄자의 재판에서 형량이 생각보다 가벼우면 불만을 제기한다. 판결에 대해 ‘국민의 법 감정’ 운운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법이 있는데 그 위에 법 감정이 있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가기는 하지만.

최근 어느 정당 대표의 재판을 1년 6개월 동안 맡아 진행해온 판사가 갑자기 ‘나 못하겠소’하고 사표를 쓰고 나가버렸다.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재판이라 그 귀추가 주목되어 왔는데 느닷없이 판사가 법복을 벗고 망치도 내던지고 법관직을 그만둬 버린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직장을 몇 번 옮겨 다녔다.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월급쟁이 생활을 했고, 다른 한 직장에서 7년을 일했다. 나머지 직장은 1, 2년 안팎 정도씩 근무했다. 그만둘 때마다 당시 내가 맡은 일을 다 마치고 그만두었다. 일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법복을 벗은 판사는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참 원. 하여간 이제는 자유”라고 단톡방에 사임의 심경을 올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법관의 직무도 어떤 면에서 3D업종에 방불한 때도 있는 것 같다. 복잡한 사건인 경우 수사 기록만 몇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도 있다. 눈알이 빠지는 혹사를 당하는 직무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를 얻기 위해 중도에 그만둔 처사는 나로서는 암만해도 이해 불가다. 직업 윤리상으로 봐도 그렇다. 일을 맡았으면 마무리를 지어놓고 사표를 내야 하는 것이 모든 직업인의 도리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아무리 사법기관이 독립의 자리라 해도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재판은 사회여론이나 무언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판사도 사람이니까.

‘하여간 이제는 자유’라는 말에서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판사도 일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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