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63회]-순천 왜교성 전투 (3)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63회]-순천 왜교성 전투 (3)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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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1월 13일에 고니시는 왜선 10척을 선발대로 출항시켰다.
고니시는 유정에게 뇌물을 주어 왜군 철수를 보장받은 상태이어서 조명 수군도 눈감아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진린과 이순신을 계산에 넣지 않은 고니시의 착각이었다.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

이순신은 장도(獐島 여수시 율촌면 장도, 일명 노루섬)에 나타난 왜선 10척을 추격하였다. 왜군 선발대는 조명연합함대에 걸려 퇴각하고 말았다.

이윽고 이순신은 진린과 함께 예교성이 바로 보이는 장도에 진을 쳤다. 이로써 고니시의 바닷길은 완전히 봉쇄되고 말았다.
분개한 고니시는 왜교성에 인질로 머문 명군 40명을 구속하고, 그중 2명의 팔을 잘라서 유정에게 강력히 항의하였다.

이러자 유정은 진린에게 말했다.
“고니시가 군사를 거두어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풀어 보냄이 좋겠소.”

진린은 유정에게 답하였다.
“수군과 육군은 각각 책임이 다르니 각자 행동하는 것이 좋겠소.”

이윽고 유정은 고니시에게 진린을 설득하라고 말했다.
고니시는 진린에게 은 1백 냥과 보검(寶劍) 50구를 보내며 “전쟁에는 피를 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길을 내주어 환국하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진린은 “수급 2천을 주면 길을 열어주겠노라”고 답하였다.

11월 14일에 왜선 두 척이 강화하자고 바다 가운데까지 나왔다.
진린이 일본어 통역관을 시켜 조용히 왜선을 맞이하여 붉은 기(旗)와 환도 등 물건을 받았다.
오후 8시에 왜장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통을 진린에게 바치고 갔다.

그런데 이 날 진린은 왜군 통신선 1척을 남해 쪽으로 보내주고 말았다. 여기에는 왜군 8명이 타고 있었다.

이것이 노량해전의 시발이었다.
남해의 왜군이 곧바로 고니시 구출 작전에 나설 것은 뻔하였다. 더구나 남해에 주둔한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고니시의 사위였다.

11월 15일 이른 아침에 이순신은 진린에게 가서 잠시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왜선 두 척이 강화하자고 두 세 번 진린의 진중으로 드나들었다.

11월 16일에 진린은 부하 장수이며 조카인 진문동(陳文同)을 왜군 진영에 들여보냈다. 얼마 뒤 왜의 사신이 배 세 척에 말 한 필과 창, 칼등을 가져와서 진린에게 바쳤다. 이후 왜의 사자(使者)들이 도독부에 끊임없이 왕래하였다.

이윽고 진린은 이순신에게 화친을 허락해 주도록 부탁하였다.
이순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장된 사람은 화친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원수를 결코 놓아 보낼 수 없습니다.”
진린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왜의 사자가 또 오자 진린이 말했다.
“내가 너희 왜인들을 위하여 통제사에게 말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제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다.”

이러자 고니시는 이순신에게도 뇌물을 바쳤다. 한밤중에 조총과 일본 도검등 선물을 가지고 와서 간절히 청했다. 이순신은 이를 물리치며 야단쳤다.
“임진년 이래로 무수히 많은 적들을 잡아서 얻은 총과 칼이 산처럼 높이 쌓였는데 원수의 심부름꾼이 여기서 뭣하려 찾아온다 말이냐?”

왜군 사자는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조금 있다가 고니시가 또 사람을 보내어 “조선 수군은 마땅히 명나라 수군과는 다른 곳에 진을 쳐야 할 터인데 같은 곳에 진을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순신은 “우리 땅에서 진을 치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너희 적들이 알 바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금 후에 진린이 이순신에게 말했다.
“나는 잠시 이곳의 고니시는 내버려 두고, 먼저 남해에 있는 왜적들을 토벌하러 가고자 하오”

이순신이 말하였다.
“남해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우리 백성이지 왜적이 아니오”

진 도독이 다시 말했다.
“이미 적에게 붙은 이상 그들 역시 왜적이오. 이제 그곳으로 가서 토벌한다면 힘도 안 들이고 머리를 많이 벨 수 있을 것이요”

이순신이 대꾸했다.
“황상(명나라 황제)이 왜적을 무찌르라고 명령하신 것은 작은 나라(小邦)의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구해내지는 않고 도리어 그들을 죽이겠다는 것은 황상의 본의가 아닐 것이오”

도독은 화를 내며 “우리 황제께서 내게 장검(長劍)을 내려주셨소”하고 이순신을 위협하였다.

이순신은 다시 “한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것이 없소. 나는 대장으로서 결코 적을 놓아주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소” 하였다.
이처럼 진린과 이순신은 한참동안 다투었다.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제4권, 2006, p 356-357 )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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