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놀게하기
우리 아이들 놀게하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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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시작하기 며칠 전, 방학 하루와 전체 계획표 짜기가 숙제라며 유난을 떨던 아이들이 나를 끌어들였다.
하루 계획표야 짜놓은 아이들이 지키면 될 일이지만 방학 전체 계획표가 문제였다.
방학동안에 해야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 위주로 짜놓은 아이들의 계획은 엄마인 나와 무관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캠프 참가하기, 시골 할머니집 가기, 섬진강 가기. 천안 큰집 가기, 부산 외할머니집 가기, 만화영화보기, 서점가기, 쇼핑하기, 수영장 가기등 찬란한 계획을 세워놓고 날짜를 잡자고 했다.

솔직히 날짜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으로 나도 계획하고 있던 일들이긴 했지만, 일을 가진 나로선 날짜를 못박아 놓고 못지키게 될 때 당할 일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순서만 먼저 정하고 하나하나 차례대로 옮겨 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호화찬란한 방학 계획들 때문에 학교 방과후 특기,적성시간에 하던 가야금도 쉬고 피아노 학원도 쉬기로 했다.
아이들 표현대로 하면 "왕창 놀아도 된다"였다.

나도 방학동안만큼은 아이들을 쉬게 하고 싶었다. 아니, 놀게 하고 싶었다.
노는 것만큼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이 있을까, 노는 것만큼 아이들을 "느끼게" 하고 "알게"하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하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을 방학동안만이라도 왕창 놀게 할 수 있을 만큼 용기(?)있는 엄마가 되기란 싶지가 안을 것이다.

방학동안만이라도 그동안 못 배웠던 것들을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해야 할 것 같고, 학년이 올라가면 시간이 없을 텐데라는 조급한 마음에 무엇이든지 가르치려드는 것이 주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들 모두가 한꺼번에 아무것도 안시키고 놀리자면 자기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러고도 싶은데 혼자 그러다가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냐는 것이 엄마들 개개인의 생각들이다.

노는 만큼 아이들을 자라게하는게 있을까>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마디씩 덧붙인다, 요즘 아이들 너무 불쌍하다고.
방학이 방학이 아닌 아이들! 어쩌다 뛰어 놀고 싶어도 막상 놀 친구가 없어 컴퓨터와 놀게 되는 아이들이 안됐단다.

굳이 불쌍하기로 하자면 아이들뿐인가?
아이들에게 잘 노는 법보다는 "주어진 대로 생각하기"만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그렇다.
자식들에게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공부"를 통해서만 가르칠 수밖에 없는 부모들도 그렇다.
자식을 사랑하되,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부모가 돼야한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젠가 초등학교 딸아이 반 방학과제물 모아놓은 것 중에서 현장보고서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겐 충격적이었다. 벙학 과제물 평가를 의식한 탓일까 한 반의 현장 보고서 가운데 2편만이 아이들이 직접한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학교에서 상을 준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다들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잘한 것들만 모아놓았다는 것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부모와 부모의 편협된 교육열조차도 아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척도로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학교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이번 방학에는 차라리 부모가 아이에게 좀 무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기회를 주고 기다려줄 줄을 알았으면 좋겠다.
잘못된 관심은 차라리 무관심만 못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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