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생각나는 것들
가을에 생각나는 것들
  • 문틈 시인
  • 승인 2023.10.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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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들은 끝이 있다. 나무, 새, 나비, 꽃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생겨난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라진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하던가. 거시적 담론에서 보자면 그러므로 모든 것은 끝을 향하여 간다고 할 수 있다.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도 결국은 개인이든 전체 인류이든 사라지고 만다. 대체 이 거대한 시작과 끝의 드라마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생겼다가 사라져가는 스토리 말이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엄연한 현실인데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

그런데도 모든 생명체는 기를 쓰고 살아남으려 한다. 그 끝에는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살려고 애를 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마당 부조리 연극 같다.

산길에서 주운 도토리 한 알을 들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겉이 반질반질한 조그마한 도토리 한 알을 들고 나는 마치 전 우주를 집어 든 느낌이다. 도토리 한 알 속에는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들어 있다. 내가 이 도토리를 땅속에 묻고 물을 주고 흙을 덮어주면 도토리는 뿌리를 뻗고 땅 위로 잎을 솟고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도토리를 맺을 것이다. 생명 발화의 기적이다.

그런데 도토리를 맺어 놓고 후손을 기약하는 그 커다란 나무도 결국은 사라진다. 도토리 속에 들어 있는 나무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언젠가는 사라지도록 종말이 예정되어 있다. 맞다. 이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고 도토리는 한 줄로 요약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봄에 시작한 모든 것들은 가을에 결실을 맺는다. 딱 여기까지면 좋을 듯한데 왜 생명은 결실 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력자나 필부나 마지막 가는 곳은 딱 정해져 있다. 무대에서 연극이 끝나고 나면 막이 내리듯 세상은 가을이 가면 막을 내린다. 오고, 가고, 오고, 가고, 가없는 되풀이 속 어느 가닥에 우리는 엮여져 있다.

먼 옛날 고구려 시절에도 아니고, 먼 훗날 언제인가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마치 그렇도록 각본에 쓰여져 있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여기서 소소한 내 역할을 한다. 나를 산다.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일년을 지낸다.

나는 진정 알고 싶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현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 환상 같은 세계에서 나는 이렇게 생명의 연쇄에 매달려 잠시 살다가 사라져가는 뜻의 궁극의 답을 알고 싶다.

우리는 봄에 싹을 트고 여름에 열매를 맺고 가을에 성취를 했는데, 대체 왜 사라져야 하는가 말이다. 사라지는 것이 답인가, 싹이 트는 것이 답인가. 자기의 잘못도 아닌데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늘에, 들에, 외치고 싶다.

어떤 나라의 대왕이 활과 칼을 든 군대를 모아 놓고 외쳤다. “전장으로 싸우러 가는 여러분은 백 년 후에 여기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가서 용맹을 다해 적을 쳐부수라.” 언젠가는 누구의 생애에도 가을이 올 것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살라고 대왕은 말한 것이었을까.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가을에는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우울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이 천지간에 외롭게 홀로 버려져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사실 가을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나를 어루만져 주는 답이 없다. 답이 없이 산다는 것은 허무하고 고독한 일이다. 가을에 도착한 모든 생명의 결실들을 보면 하늘과 땅의 합작으로 대공사를 벌여 이룩한 것들이다.

최근 몇 년 새 내 주변의 지인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세상을 떠났다. 혹은 병고에 시달리다가, 혹은 이유를 모르는 일로 세상을 하직했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서로 연락을 하던 분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본 나는 이 모든 슬픔이 가을이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 년 만에 만난 가을은 내게 슬픔을 한아름 안겨주고 떠난다. 거리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헤어지며 흘리는 가을의 눈물방울 같다. 이 지독한 쓸쓸함을 어이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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