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꾸지마
꿈도 꾸지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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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한다.
간혹 들바람이 지나가면 허리 좀 펴고, 구부정하게 밭매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생각은커녕 징그럽게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미인의 탤렌트는 CF 한 편 찍는데 몇 억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더운날 카메라 앞에서 고생하며 찍는다고 정말 프로는 아름답다고 재잘거리는데, 밭에서 땀을 드럼통으로 흘려도 마늘값, 보리값, 쌀값, 순수하게 이익을 남겨 주머니로 들어오는 법이 없다.

일하는 여성농민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양어장을 하는 우리동네 아저씨는 '화장하지 않는 여자는 게으르다'며 점심때까지도 화장하지 않은 아내를 향해 밥상을 던졌다는 엽기적인 일도 있었다고는 한다. 땡볕에 육체적인 노동을 하거나 없는 살림에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스스로의 얼굴을 치장하기가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여지는 얼굴의 아름다움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성농민의 노동을 아름답게 쳐주지 않는 것이 더 큰 구조적인 문제이다. 나이들어서까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아름답다는데, 우리 여성농민들은 60,

여성농민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70이 먹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일까, 프로처럼 하지 못해서 일까.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려고, 논을 구하면 다들 안타까워한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 더 안타까워한다. 쌀이 남아돈다고, 쌀이며 마늘이며 수입문이 활짝 열렸으니 농사지어도 팔 때도 없고, 값도 없을 것이라고 협박이다.

아기를 낳아도, 몸조리는 커녕 일을 대신 해줄 사람도 없으니 산후풍이니 우울증이니 실컷 앓으라고 방치한다. 그러다보면 밭으로 하우스로 나가는 걸음이 무겁고, 가난한 날의 행복은 커녕 불안과 불협화음이 여름날 납량특집 수준이다.

우리 동네 옆에 미술관이 있다. 바닷가 한 쪽에 폐교된 작은 학교를 고쳐서 아저씨는 미술을 하시고, 언니는 천연염색을 하신다. 30대 중반의 그 언니는 남편이 미술한다고 혼자 돌아다니실 때 생활고, 육아, 인생의 전망으로 적지 않은 고생과 고민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옷감에 황토며 재로 물을 들이고, 미싱을 밟으며 삶의 희망이 생긴 표정이었다. 조금씩 주문도 늘고, 밤새 일을 한 후 새벽 동이 터올 때면 그렇게 기분좋을 수 없다고 한다. 아저씨도 요새 즐겁게 몰두하며 일을 하는 부인을 보니 저절로 행복하다고 했다.

마침 화면에서는 한 흑인 여성의 바이올린 연주가 열정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많은 백인 남성들과 관객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누구든지 기운내시오, 희망을 잃지 말고, 열정적으로 다시 한번!' 그렇게 악을 쓰는 것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여성농민도 열정적으로 우리 일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 그러기에는 국가나 사회에서 우리를 너무나 등한시 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다들 응원했다. 포기했던 꿈들, 희망없는 노동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싶지 않다.

아기가 자라듯이 들에서 열매맺는 것을 거두고, 일하며 함께하는 술한잔에 남편과의 정이 차곡차곡 쌓이고, 일한만큼의 댓가와 대우가 있고, 거짓없는 우리들의 땅이 있고, 자연에서 폭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하고 싶었던 활동도 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정말 '저푸른 초원 위에' 나 나오는 꿈깨야 하는 비몽사몽의 비현실적인 낭만일까.

우리 여성농민은 그런 꿈을 꾸면 안되는 걸일까. 우리도 아름다워 지면 정말 죽어도 안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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