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통하려면 자긍심부터 키워라"
"영어로 통하려면 자긍심부터 키워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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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나라는 영어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펭귄족 아버지들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영어 하나만이라도 잘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서 부인과 자녀들을 영어권 나라로 보내 놓고 뼈 빠지게 돈을 벌어 보내면서 혼자 지내는 아버지들. 그 교육열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요?

학교 다닐 때 영어가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과목이었으니 제 영어 실력은 자랑할 정도는 못 되었습니다. 외국은행에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고생 좀 했지요. 영어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어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 속상했던 순간, 기왕 우리 나라가 식민지 통치를 받아야 했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필리핀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이지요. 처음에는 영어를 잘하는 덕분에 196O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였어요. 마르코스 독재 정권 때문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지금 장래가 암담한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쇠퇴의 일차적인 이유는 정치적인 혼란 때문이고, 섬이 너무 많은 지리적인 요인도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과 이슬람교도의 갈등도 국론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느긋한 성격도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이고요.

그런데 저는 색다른 의견을 주장하고 싶어요. 필리핀이 영어를 잘 해서 망한 나라라고 봅니다. 언어적인 장애 때문에 해외 진출이 어려웠던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필리핀 사람들은 해외에서 일자리 찾기가 수월했지요.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중산층들은 해외로 살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대략 6백만 정도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취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국적을 바꾼 사람들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을 떠났으리라고 봅니다.

제 나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영어실력 국제경쟁력과 무관

중산층이 많아야 소수 특권층의 횡포에 저항할 수도 있고, 빈민층의 불만도 수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 비해 중산층의 비율이 약하고 중산층 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필리핀의 정치적인 혼란은 해결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듯 보입니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 나라의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영어만 잘 하면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지만 나라가 힘이 없다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거나 중요도가 낮은 자리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우리보다 훨씬 많지만 고위직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자기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결정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지요.

물론 국제화 시대에 자녀들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는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일 아닐까요? 자녀들과 함께 www.angrylittleasiangirl.com을 들어가서 미국에 사는 야무진 한국인 2세 소녀가 왜 화가 났는지 들어보세요. 어쩌면 영어 실력도 기르고 아이에게 세계 속의 한국인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을 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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