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문틈 시인
  • 승인 2023.04.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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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는 화려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눈이 부시다. 이렇게 꽃이란 꽃들이 폭죽을 터트리듯 한꺼번에 죄다 피어나다니. 이런 일은 썩 드문 일이다. 봄이 오면 대개 꽃들도 순서가 있어서 먼저 산수유가 피고, 이어 개나리가 피고,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꽃들이 핀다.

올 봄은 무슨 일이라도 난 듯 벚꽃은 물론이고 진달래, 철쭉, 동백까지도 일시에 다 피었다. 심지어는 5월에 피는 라일락이 3월 하순에 피었으니 내가 놀랄 만도 하다. 지구 온난화 탓이라고도 하고, 1백몇 년 만에 봄이 일찍 왔다고도 한다. 그 연유를 알고 싶다.

내가 꽃들을 반기면서도 은근히 두려운 것은 꽃들이 너무나 일찍 개화한 바람에 벌들과 꽃들 간의 연락이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아서다. 4월초 어느 날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병원 주변이 온통 꽃들로 둘러싸여 찾아온 사람들이 진료도 잊은 채 사진을 찍고 꽃구경에 빠져 있었다.

나도 꽃그늘에 가서 꽃들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가 꽃들을 살펴보고 놀랐다. 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벚꽃들이 한창일 때는 벌들이 날아와 잉잉거리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꿀과 꽃가루를 취하고 벚꽃에게 수분을 해준다. 그런데 반드시 찾아와야 할 벌이 안보이는 것이 수상했다. 꽃잔치에 꼭 와야 할 손님이 안 오다니.

나는 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옛날에 부모님이 한동안 밀원을 찾아다니며 벌치기를 하신 일이 있어 벌과 꽃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2월에 제주에서 유채꽃을 보고 5월에 전남 몽탄에서 아카시아꿀을 따고, 이런 식으로 밀원을 따라 가을엔 강원도 영월까지 꿀농사를 하러 다니셨다.

그 덕에 나는 벌과 꽃의 오랜 계약 관계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의 꽃나무들에 꿀벌들이 날아오면 이 도시 외곽 어딘가에 벌치기가 있나보다 하고 반갑게 바라보곤 했다.

벌들이 안 나타나디니, 꽃과 벌들의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작년에 벌들에 관련된 뉴스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벌들이 많이 죽어 벌농사를 망쳤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모른다. 그런 판에도 벌들은 꽃을 찾아와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올 봄에는 아예 벌이 전혀 안보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꽃들이 너무 일찍 피다보니 벌들이 미처 올 차비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은 벌들에게 꽃들이 열매를 맺게끔 수분을 시키는 역할을 맡겼다. 그 대가로 꿀과 꽃가루를 주고 있는데 벌이 안 보이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벌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분자이며, 우리가 먹는 식물의 3분의 1, 꽃이 피는 식물의 80%를 수분한다. 벌과 다른 수분 곤충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1500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꽃의 수분은 꿀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수원이나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기르는 딸기나 파프리카, 토마토 등의 수분은 주로 뒤영벌이 한다. 꽃가루 모으는 전문가인 뒤영벌이 꿀벌보다 수분을 더 잘 시킨다. 특히 고추나 가지, 토마토 등의 작물은 뒤영벌이 아니면 바람으로만 수분이 가능하다. 올 봄에는 몸집이 둥그스름한 귀여운 뒤영벌조차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나는 올 봄에 겨우 나비 몇 마리를 보았을 뿐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망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널리 알려졌다. 수천 만 종의 곤충 가운데 꿀벌은 지구 생태계를 바꿀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벌이 사라지면 식물과 동물의 생태계와 식물계가 무너질 수 있다.

식량, 약품원료, 의복, 건축자재들도 작은 꿀벌의 역할 안에서 생겨난다. 꿀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약 4만km를 이동할 정도로 활동을 한다. 육상 식물의 절대 다수가 꿀벌의 신세를 지고 있다. 농작물의 70퍼센트가 꿀벌의 수분에 의해 생산된다고 한다.

이런 꿀벌이 꽃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나의 걱정은 대자연으로 확대된다. 내가 사는 곳 말고 어디선가는 벌들이 부지런히 수분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저 남쪽 땅, 도시 문명이 덜 오염된 지역에서는 자연이 벌들을 깨워 꽃들에게 보내 수만 년 해왔던 일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는 비바람에 꽃들이 지기 시작하는데도 벌이 안 보인다. 그래서인지 눈부시게 피어난 꽃들이 마치 병자가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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