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은 기다린다
무등산은 기다린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23.03.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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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로렐라이 언덕은 가보지 못했다. 다만 차를 타고 지나치며 차창으로 보았을 뿐이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시를 쓰고 프리드리히 질허가 작곡한 노래가 민요로 불리며 더욱 유명해진 라인강의 절벽, 그것이 로렐라이 언덕이다.

예부터 전설로 전해오기를 요정 로렐라이는 노래를 부르며 이 절벽 위 바위에 앉아 노래를 불렀는데 라인강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취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느라 배가 물살에 휩쓸려 암초에 부딪쳐 자주 난파했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저 평범하다면 그렇고 그런 언덕에 지나지 않는 이 언덕이 시와 노래의 옷을 입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유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한해 관광수입이 어마어마하다. 노래 한 곡에 실린 강 언덕이 가보고 싶은 관광지로 변모한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 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색시/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로렐라이 언덕)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 내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무등산이 세계적 K-문화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등산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등산에 오르는 관광객들이 인권, 평화, 그리고 무등산 이름에 기대어 차별없는 세상의 이미지를 입혀 로렐라이 언덕 못지않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전설, 시, 노래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10대 시절에 김현승 시인의 시 한 편을 읽고 지금까지도 무등산 하면 아늑하고 그윽한 품이 넉넉한 이미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11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무등차).

이런 시를 가곡이나 뮤지컬, 요새 유행하는 K-컬쳐로 표현해볼 수는 없을까. 광주는 예향이라 일컬을 정도로 시인 묵객을 많이 산출한 도시인데도 호남의 보물 무등산을 방치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 그 누가 나타나 무등산 봉우리에 전설의 횃불을 환히 치켜들어 줄 것인가.

파리의 세느강은 그저 평범한 강이다. 서울의 한강보다 못하다. 한데 세느강은 시인 아뽈리네르의 시 ‘미라보다리’, 그리고 37개의 아름다운 다리, 그 가운데 ‘예술의 다리’ 또는 ‘사랑의 자물쇠 다리’로 불리는 퐁데자르(자물쇠를 걸어서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 ‘미라보 다리’, ‘퐁네프’, ‘알렉산드르3세 다리’ 등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K-컬쳐가 지구촌에 물결치고 있다. 건국 후 지금까지 한국은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려고 정부 차원에서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지내왔는데, K-pop이 유튜브를 타고 세계를 휘몰아치며 K-food, K-classic, K-관광, K-의료 등 일파만파로 한국문화가 마침내 세계인의 환호를 받고 있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일찍이 인도의 시인 타골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에게 보내온 짤막한 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격려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지금 한국은 지구촌에 문화예술의 발신지가 되고 있다. 무등산에도 그 등불이 빛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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