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신지 않는 남자
신발을 신지 않는 남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23.01.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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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발을 신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남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게 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살고 있다 한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당신보다 더한 사람도 있네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단지 방을 따로 얻어 나와 자가격리하고 있을 뿐 불가피하게 꼭 가야 할 곳엔 간다. 드물기는 하지만 병원, 마트,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혼자서 개천가를 걷는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동선은 지키면서 사는 셈이다.

다만 이발소나 식당, 카페 같은 밀폐된 공간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누가 만나자 해도 나는 응하지 못한다. 이런 생활이 벌써 3년이 넘었다.

한데 그 남자는 60대 중반의 건강한 가장인데 코로나가 무서워 누가 나오라 해도 일체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 집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가만가만 걷기도 하고, 집안에서 방구석 인간으로 산다는데 전혀 답답해하지 않는다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이 어떻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에스키모가 얼음바닥 위에 얼음벽돌로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아기를 낳고 살듯이 살기로 하면 아무리 답답하고 험한 곳에서도 인간은 살아간다.

생명 가진 것의 적응력이란 실로 놀라울 정도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것에 탄복할 정도다. 나로 말하면 사회생활을 중단하다시피하며 살고 있지만 별 불편한 점은 못 느낀다. 저 유명한 파스칼은 평생 마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다 한다. 그러고도 과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꽃가꾸기의 전문가가 되다시피했고, 무엇보다 수많은 편지를 남겨 나중에 《옥중서신》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은 제약을 받는 가운데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 같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훗날 어느 잡지에 쓰기를 ‘나는 때때로 감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곳에서 책을 실컷 읽었고, 사색을 깊이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치활동으로 바빠 그렇지 못하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감옥에 가고 싶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인간에게는 어떤 극한의 제약이 가해질 때 무서운 힘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저 위대한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 시국에 못다 읽은 책들을 읽고 있으며, 이런저런 글들을 쓰며 지낸다.

이 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니 고작 몇 평의 집안이 내가 살고있는 세계처럼 생각된다.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화장실로, 부엌으로, 베란다로, 이런 움직임은 과장하자면 세계여행에 방불하다.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그 누구로부터의 간섭도 받지 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 이러다 보니 밖에 나가는 것이 되레 싫어질 정도다.

나는 이제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유배를 갔고, 그 중에는 위리안치라고 해서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서 한 걸음도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형벌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유배 중에 훌륭한 저술을 남겨 ‘인간승리’를 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간 영혼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의 크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이 추구하는 열정의 크기에 따라 빛을 발한다.

아내한테서 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 남자는 분명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고는 있지만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요가를 하든,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자기완성을 위한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지낼 수는 없다. 나는 나머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은 분명 무엇인가를 하며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인생이 살만한 것은 타의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감옥에서, 수용소에서, 집에서만 산다고 해도 그에게는 충분히 빛을 발할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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